▶ 관타나모 수감자의 인생유전-튀지니아 출신 알카에다 가담혐의 체포
▶ 수용소서 풀려 났지만 끝없는 감시 고통…평범한 삶으로의 복귀 소망 마저 끊겨

헤디 하마미는 8년을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지냈다. 관타나모에서 풀려난 뒤 튀니지아로 돌아간 그는 경찰의 끊임없는 감시와 협박, 거처기습과 심한 괴롭힘에 시달린다. [Tara Todras-Whitehill / 뉴욕타임스]
추운 겨울 저녁, 두꺼운 자켓에 털모자를 눌러쓴 채 버스정류장 앞에서 동전을 세고 있는 헤디 하마미의 모습은 귀가 길에 오른 튀니지아의 평범한 노동자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절룩이는 걸음걸이와 순간순간마다 갑자기 말을 끊고 고통으로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은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하마미(47)는 “관타나모 후유증 탓”이라고 설명한다.
쿠바 관타나모베이의 미군기지 수용소에서 8년을 보낸 그는 석방 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문과 부당한 취급으로 인해 얻은 두통과 우울증, 불안발작증 등에 시달린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하마미는 관타나모에서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온 뒤 야간 구급차 운전기사로 일하며 새로운 삶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튀니지아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은 관타나모의 독방에서 테러리스트 수감자로 지내는 것에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었다. 견디다 못한 그는 결국 국제 적십자사에 관타나모 형무소로 되돌아가도록 도와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미국 국무부와 연결시켜주면 본인이 직접 관타나모에 재수감해줄 것을 요청하겠다는 얘기다.
미국 정부가 찍어놓은 테러리스트라는 낙인 탓에 그는 튀니스 경찰로부터 잦은 가택수색과 위압적 조사를 받아야 했다.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다”는 하마미는 “이 나라에는 나를 위한 미래가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적십자사는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지난 2010년 관타나모에서 풀려난 후 하마미가 찾은 튀니지아는 이슬람 주의자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독재자 엘아비디네 벤 알리의 지배하에 있었다.
하마미는 튀니지아 당국에 의해 구 소비에트 공화국인 그루지아로 보내졌다. 그러나 2011년 벤 알 리가 대중봉기로 권좌에서 축출되면서 이른바 ‘아랍의 봄’이 전개되자 하마미는 새로 들어선 본국 정부와의 협상을 거쳐 다시 튀니지아로 돌아왔다.
기막힌 타이밍 탓에 그는 정치범 일제사면의 혜택을 입었고 2013년에는 보건부에 일자리도 배정받았다.
하지만 봄날은 너무도 짧았다. 그가 공무원으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새벽 3시에 그는 문을 부수고 집 안으로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경찰서로 강제 연행됐다. 그날 경관들은 하미드에게 두손과 두발로 기어 계단을 내려가게 했다.
경찰서에 끌려간 그는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데려왔다”는 짤막한 설명과 함께 15분 만에 풀려났다. 그것이 끝 모를 괴롭힘의 서곡이었다.
그 일 이후 하마미는 끊임없는 경찰의 감시와 기습,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 셀폰과 컴퓨터를 압수당한 것은 물론 이사를 하면 짐을 풀기도 전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그들에겐 오밤중과 꼭두새벽의 구분이 없었다. 2015년 하마미는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노동허가증을 빼앗긴 것은 물론이고 처음 6주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 경찰서로 가서 소재신고를 해야 했다.
하마미는 지금도 행정통제 대상으로 남아 있다. 경찰은 장난이라도 치듯 제멋대로 법을 집행한다. 수도 튀니스 밖으로 나가선 안 된다는 여행금지명령이 떨어졌고 툭하면 경찰서로 연행했다. 경찰의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에게 방을 내준 집주인에게 조직적인 협박을 가하는 바람에 하마미는 3년 동안 무려 6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다.
알제리아 국적인 그의 아내도 영주권을 몰수당했다. 취업길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쥐꼬리만한 하미드의 봉급에 의존하다보니 사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경찰이 초래한 스트레스와 긴장은 관타나모에서 얻은 심리적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튀니지아에서 세계고문방지기구의 심리상담사로 활동하는 림 벤 이스마일은 관타나모에서 풀려난 수감자들 가운데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라고 말한다. 튀니지아 국적의 관타나모 석방자 12명을 상담했다는 이스마일은 “그곳에서 수감자들이 심신의 고통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고국으로 귀환한 후 끝없이 가해진 심리적 고통에 비할 바 아니다”며 “이 때문에 풀려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하마미처럼 관타나모 형무소의 독방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관타나모에서 풀려난 수감자들은 모두 죄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 가족 전체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심리적 압박과 일상적 폭력에 시달린다”고 전하고 “끊임없이 가해지는 협박과 공안당국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수감자 출신의 부모들조차 아들이 관타나모로 돌아가는 편이 훨씬 안전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귀국한 수감자들 가운데 한명의 부모는 경찰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수시로 자살충동에 빠졌고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시리아로 탈출했으나 그곳에서 IS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튀니지아가 테러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13년 이후 알카에다 연계 그룹들의 테러공격이 이어졌고 2015년과 2016년에는 국립박물관과 해변 휴양지호텔 등지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비롯해 70명이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숨졌다. 또한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 중인 IS 소속 외국인 전사들 가운데 튀니지아 출신자들의 수가 가장 많다. 이들 중 일부는 IS 지도부와 다른 극렬무장집단으로부터 고국으로 돌아가 테러공격을 선동하고 실행할 것을 종용받고 있다.
하마미는 경찰이 그를 극렬주의 세력권으로 떠밀어 넣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튀니지아의 궁핍한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86년 일자리를 찾아 이탈리아로 갔다가 그곳에서 이슬람선교그룹인 타부리히 자마아트에 합류했고 후일 파키스탄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았다.
2002년 아프가니스탄의 알카에다 캠프에서 테러 훈련을 받은 혐의로 파키스탄에서 체포돼 미국 측에 신병이 인도된 그는 재판 없이 곧바로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됐다. 그러나 그는 줄기차게 아프가니스탄의 알카에다 캠프를 방문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결국 수감된 지 8년 만에 풀려났다.
과거를 잊고 조용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하마미는 “내가 원하는 것은 안정된 삶을 사는 것 뿐이지만 외부의 힘은 죽음을 향해 내 등을 떠민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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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The New York Ti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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