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수성가 억만장자 도널드 프리즈
▶ 고아원-농장일꾼-125달러 들고 서부행-로런스사 회장

남가주 버논에 본부를 둔 건축용 유리관련 생산업체 C.R. 로런스사의 도널드 프리즈 회장. 지난해 13억 달러에 회사를 매각했으나 경영은 계속 맡고 있다. 그는 회사매각 대금 중 8,600만 달러를 매각 당시 1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로 지급해 직원들을 감동시켰다. 1인당 평균 6만 달러 꼴의 보너스였는데 특히 창고 운영 책임자인 장기근속 2명의 직원은 각기 1백만 달러씩을 받았다.
도널드 프리즈(76)는 건축용 유리관련 제품을 생산하고 배급하는 회사 C.R. 로런스사의 최고 경영자다. 남가주 버논에 위치한 이 회사는 화려하고 멋진 비즈니스는 아니다. 그러나 지난 50년의 세월 동안 프리즈를 빈털터리 청년에서 존경받는 억만장자로 바꿔놓은 곳이다.
프리즈의 스토리는 고아원에 보내진 가난한 아이에서 열두살짜리 소년 농장일꾼을 거쳐 고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했다가 제대 후 125 달러를 들고 무작정 서부를 찾아 와 억만장자가 된 성공담이다. 그의 스토리가 더욱 감동을 주는 것은 성공의 성과를 직원들과 공유한 나눔 경영을 실천한 때문일 것이다.
프리즈 회장은 스스로 ‘크레이지 라이프’라고 표현하는 자신의 인생역전에 대해 즐겨 이야기 하는 편은 아니다.
1940년 펜실베이니아 주 요크에서 태어난 그는 아주 가난한 집 13남매 중 셋째였다. 5살 때 부모는 그를 남자 형제 한 명과 함께 고아원으로 보냈다. “부모님은 정말 가진 게 없었지요. 우리를 기를 돈이 전혀 없었던 겁니다”
12살 때 그는 낙농장의 소년 일꾼으로 보내졌다. 그 다음엔 돼지농장, 또 그다음엔 야채농장으로…“당시엔 모든 농부들이 포스터 페어런츠 같았습니다. 내가 일하는 것을 배운 것은 그 농장들이었지요.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했습니다”
그에게 부모는 완전히 타인은 아니었지만 타인과 비슷했다. 그 때문에 괴로울 때도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한 번도 가져보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지는 않는 법이니까요…내가 어떻게 태어나는가에 대해선 내게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선택권이 내게 있다는 것은 확신합니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육군에 입대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미군이 아직 베트남으로 파견되기 전인 1958년이었다. 타이완과 오키나와에 주둔했던 프리즈는 미사일 미캐닉으로 훈련받았다. 농장에서의 삶과 비교하면 프리즈에게 군대생활은 경이로운 신세계였다. “지나간 어떤 삶보다 군대에 있을 때 나는 자유를 누렸습니다. 가장 멋졌던 것은 ‘사람들’이었지요. 미 전국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과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때의 경험이 내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을 배우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3년 복무하고 제대한 후 프리즈는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 수중에 125달러뿐 직장도, 계획도 없었다. 자동차를 가진 한 친구와 함께 서부행을 감행했다. “해변에 비키니 차림의 여자애들이 있는 곳, 그게 펜실베이니아의 빌어먹을 농장보다는 훨씬 더 좋아보였으니까요”
LA에 도착한 후 프리즈는 다운타운 7가와 마테오 스트릿에 위치한 C.R. 로런스 사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시간당 2달러50센트를 받는 말단 직원이었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유리를 제외한 유리 건축 관련 모든 제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다. 자재 주문, 카탈로그 제작, 고객 대하는 법도 빼놓지 않았다. “난 고객이 우리 회사와 거래하기 원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의 능력은 탁월했고 발전은 눈부셨다. 몇 년 후 회사 소유주 버니 해리스가 프리즈에게 지분을 팔겠다고 제안할 정도였다. 프리즈는 당시 해리스가 자신을 우수한 직원일 뿐 아니라 회사의 자산이며 언젠가는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고 회상한다.
경쟁자 보다는 파트너로 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해리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프리즈는 10% 회사지분을 1만 달러에 샀다. 그리고 계속 투자를 늘려가다가 20년 후 해리스가 은퇴할 때 회사를 매입했다.
프리즈의 오랜 경영 동안 배급회사와 부품 제조회사 등을 매입하는 등 발전과 성장을 거듭한 C.R. 로런스는 미국의 최대의 유리건축 관련제품 공급회사로 부상했다.
프리즈가 일을 시작했을 때 24만 달러였던 연매출은 2015년 5억7,000만 달러로 치솟았고 당시 LA 다운타운에서만 비즈니스를 하던 회사는 이제 미 곳곳은 물론 독일, 호주, 덴마크, 캐나다까지 지점망을 넓혀 40개 지부를 거느리고 있다.
몇 년 전 프리즈는 이제 회사의 바이어를 찾아야 될 때라고 결정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었을 때 문득 생각했지요. 난 이제 70세인데 이 회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1,700명이 넘는 직원들 모두가 계속 일자리를 갖고 돈을 벌 수 있게 해주어야하는데…”
다양한 원매자들이 있었으나 프리즈는 아일랜드의 건축자재 대기업인 CRH에게 팔기로 결정했다. 현금으로 13억 달러를 받았다. 매매조건의 하나는 프리즈가 경영대표로 계속 근무한다는 것이었다.
프리즈는 언제나 말보다는 행동을 믿는 사람이다. 땡큐도 마찬가지다. “난 ‘아, 정말 일을 잘 해냈군요. 땡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싫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내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부양하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회사를 매각했을 때 프리즈는 받은 돈 중 8,600만 달러를 떼어내 당시 1년 이상 근무한 종업원 약 1,400명에게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1인당 평균 6만 달러 꼴이었다. 물론 그보다 적게 받은 사람도 많지만 훨씬 더 많이 받은 직원들도 있었다.
프리즈는 특히 두 사람을 기억한다. 오랫동안 회사 창고들 중 일부를 운영해온 직원들이다.
프리즈는 두 사람을 회장실로 불러 회사를 팔았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난 땡큐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후 그들 각자에게 100만 달러 수표를 주었지요. 그리고 우리는 함께 울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량 이상의 일을 언제나 적극적으로 성실히 하는 직원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고 프리즈는 말했다.
지금도 새벽 6시에 출근해 저녁 6시 반(토요일만 정오)에 퇴근하는 프리즈회장은 3명의 성장한 자녀들에게 너무 많은 재산을 남겨줄 계획은 없다면서 자선단체 기부가 유산의 주요부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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