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1580년 이집트 공주 심장질환 등
▶ 각종 전염병 비롯 장내 기생충까지 밝혀
리투아니아 빌니우스의 성당 지하의 묘실에는 수백구의 해골들이 몇세기 동안이나 안치돼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놀랍게도 꽤 많은 미라들이 발견됐다. 지난 수년 동안 학자들은 이 미라들이 앓았던 질병을 연구함으로써 17~19세기 사람들의 건강상태를 알아내려 노력하고 있다.
“너무 잘 보존돼있어서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는 이탈리아의 인류학자 다리오 피옴비노 마스칼리는 최근 동료들과 함께 미라 한 구에서 천연두 바이러스의 자취를 발견했다. 이것을 잘 연구하면 20세기에만 3억명의 생명을 앗아간 전염병의 기원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구루병, 골관절염, 장내 기생충도 이미 미라에서 발견된 바 있다.
미라의 사체를 연구하면 불치병과 전염병 등이 확산된 역사적 배경과 당시 의료 상황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유행 기간과 감염 지역 등을 분석한 학자들은 오늘날의 질병 퇴치에 이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스위스 취리히 대학의 스위스 머미 프로젝트 수장으로 이란과 이집트의 미라들을 연구하고 있는 닥터 프랭크 륄리는 “현대의학은 고대 미라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하고 “이 오래된 환자들의 병력은 우리들에겐 마치 보물상자와 같다”고 전했다.
빌니우스의 중심에 있는 리투아니아 도미니카 성당은 후기 바로크 건축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성당 내부 제단 앞에 있는 나무 플랫폼을 들어 올리면 한사람이 간신히 내려갈 수 있는 돌계단이 나온다.
어둡고 먼지가 가득한 지하세계로 들어가 검은 쇠문을 지나면 시체들이 안치된 미로와 같은 방들이 나온다. 이곳에서 오랜 세월 동안 시체들이 썩지 않고 잘 보존된 이유는 지하실의 서늘한 온도와 통풍 때문이다.
1960년대에 주오자스 알비나스 마쿨리스라는 법의학자가 처음 미라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빌니우스 대학 학생들과 함께 지하 묘실에서 500구의 시체를 확인했는데 이중 200구가 미라 상태였다. 그러나 1962년 리투아니아 정부는 이 묘실에서 전염병이 시작될 것을 우려해 미라들을 유리벽 안에 봉인하라고 명령했다. 유리벽이 세워지자 통풍이 차단되면서 습기가 차기 시작했고 미라들이 부패하기 시작했다.
인류학자들이 다시 이곳을 조사할 수 있게 된 것은 2004년. 묘실에는 마쿨리스(1987년 사망)가 발견했던 200구의 미라 중에 23구만이 온전하게 남아있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연구진은 미라들에서 충치와 잇몸병, 관절염, 골 기형을 찾아냈다.
가장 잘 보존된 미라 7구는 건강 상태를 더 자세히 연구하기 위해 CT 스캔도 실시했다. 한 비만 남성은 척추와 골반, 양 무릎에 관절염이 있었고 오른쪽 갈비뼈가 골절됐으며, 갑상선 비대증을 갖고 있었다. 한 비만 여성은 등 아래 부분에 악성 종양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현대 성인병으로 알려진 동맥경화증도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옛날 사람들이 아니라 현대인의 의료상태를 검진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학자들은 17세기 어린이 미라에서 채취한 샘플을 캐나다의 동료에게 보냈는데 거기서 인류의 대재앙 중의 하나였던 천연두를 발생시키는 바리올라 바이어스의 흔적을 찾아냈다. 이 바이러스의 유전배열을 알아냄으로써 연구진은 이 무서운 전염병의 기원에 대해 좀더 잘 이해하게 됐다. 이제껏 천연두 감염의 유적은 한군데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놀라운 발견이었다고 흥분한 연구진은 이것이 가장 오래된 게놈 완성 바이러스라고 설명했다.
미라의 정밀 분석이 현대인의 질병연구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예는 리투아니아 묘실뿐이 아니다.
2013년 캔자스시티의 세인트 루크 심장학회의 닥터 랜달 C. 톰슨 연구진은 고대 이집트와 페루인, 사우스웨스트의 아메리칸 원주민들, 알류샨 열도의 우낭간 부족 등의 미라 130구를 CT 스캔했는데 미라의 3분의 1이 아테롬성 동맥경화증을 갖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이들은 4,000여년 전 지구의 여러 지역에서 여러 시기에 걸쳐 살았던 미라들이다. 결국 심장질환은 현대인의 식습관에 따른 성인병이 아니라 인류사회에 오랫동안 만연해온 질병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관상 동맥성 심장질환은 기원전 1550-1580년에 살았던 이집트의 공주 아모즈 메리타문이었다. 가장 오래된 동맥경화의 증거는 기원전 2000년 경에 살았던 이집트 미라에서 발견됐다.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의 성당 제단 바로 아래 지하 묘실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이 있다. <사진 Kiril Cachovski>

빌니우스 성당 지하 묘실에서 발견된 23구의 미라 중 하나. 피부와 장기까지 보존돼있어서 의학 연구에 사용되고 있다. <사진 Kiril Cachov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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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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