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나가던 무역회사 직원 주식 손댔다 빈손
▶ ‘장사꾼의 끼’… 패니백으로 선풍적 인기…평생 취득한 비즈니스 정신 2세들 전수 꿈

박병철 에베레스트 트레이팅 콥 회장은 “젊은 2세들에게 강인한 정신력을 통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며 은퇴 후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를 위해 힘쓰고 싶다”고 강조했다.
<사진 박상혁 기자>
웬만한 한인가정에 에베레스트 가방 한 두 개 없는 가정은 없을 정도로 가방으로 친숙한 이미지를 풍기는 에베레스트 트레이딩콥사의 박병철 회장(70).
2014년부터 세계한인무역협회 이사장으로 전 세계 한인무역인들의 권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젊은 기업인들에게 경영기법을 전수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가방 하나로 세계를 공략한 기업인이다. 한국에서 외대 무역학과 졸업후 미쓰이 종합상사 서울지점, 삼화무역회사 등에서 일하면서 주식투자로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했으나 지난 1979년 10.26사태 이후 투자했던 주식이 폭락해 재산을 모두 날렸다.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제주도의 한 아파트에서 친구의 도움으로 근근히 살아가던 그는 1981년 도미해 스왑밋 등에서 가방을 팔기 시작, 지난 1982년 가방 도매상 ‘에베레스트 트레이딩 콥’을 설립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36년째 가방을 취급하고 있다. 120여 종류에 달하는 다양한 종류의 가방을 전 세계에 공급하면서 ‘가방업계의 제왕’자리를 구축한 그는 오늘도 신용을 생명으로 ‘에베레스트’라는 상호명에 걸맞는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이민 초기 생활은
▲한국에서 외대 무역학과 졸업후 무역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무리한 주식투자로 재산을 모두 날린 후 한동안 잠적했다. 장남으로 성장하면서 누구에게 기댄다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 1981년 9월 세 살배기 장남과 갓 돌이 지난 차남, 아내 대양과 함께 네 식구가 빈털터리로 LA에 왔다. 아내가 군소리없이 따라와 준 것이 내심 고마웠다. 한인타운의 한 모텔에서 이틀 자고 올림픽인근의 원베드 아파트에서 350달러 렌트를 내고 살았다. 이불이 없어 카펫에서 자고 베개가 없어 수건을 말아 잠을 청했다. 양복만 달랑 두벌을 가지고 왔는데 아침,저녁으로 제법 추웠지만 20달러가 약간 넘는 잠바를 사 입을 형편이 안됐다. 한인이 운영하는 햄버거 가게에서 새벽부터 가게밖의 테이블의 비둘기 똥도 닦고 오븐에 불을 붙이는 식당보조로 두 달여간 일했는데 한달 600달러의 수입으로 생활할 수 없어 장사를 시작했다.
-어떻게 가방을 팔 생각을 했나
▲한국에서 일했던 무역회사에서 가방 재고가 있으니 팔아보라는 권유로 LA에서 가방을 팔기 시작했다. 스왑밋, 주유소 빈 공간 등에서 소매업소에서 파는 가방보다 마진을 적게 보고 박리다매로 물건을 팔았다. 한국에서 보통 결혼식을 하면 신랑신부가 하객들에게 보따리를 선물로 주곤 했는 데, 가방이 물건을 담기도 좋아 “보따리 같다”고 생각했고 누구나 필요한 생활용품이라고 여겨서 선택했다. 고객을 모으기 위해 가방을 공중에다 던지면서 ‘Save Money’라고 크게 외치는 등 주위의 시선을 끄는 마케팅으로 고객을 모았는 데 ‘장사꾼의 끼’가 핏속에 흐른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한 번은 LA 날씨답지않게 갑자기 비가 쏟아져 오늘 장사는 끝장이라고 포기하려는 순간 가방에 물이 새지 않는다는 문구를 부착한 것을 발견하고 ‘New Waterproof Bag. 5 Dollars‘ 라고 사인을 고쳐놓았더니 고객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방수가방이 제대로 히트를 쳤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기지를 발휘한 셈이다. 이때 장사가 잘 돼 하루 2,000달러 정도 팔면 마진도 40~50%이상은 돼서 가방장사에 대해 묻는 한인들에게 노하우를 가르쳐주고 그들에게 물건을 공급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에베레스트 트레이딩 콥의 설립과 성장은
▲1982년 3월 에베레스트 트레이딩 콥을 설립해 스왑밋, 소매상들에게 가방을 공급했고 1985년부터 한국에서 가방을 수입해 에베레스트 브랜드를 달아 미국시장에 팔면서 업체 규모를 키우는 와중에서도 북가주의 스왑밋을 오가며 계속 가방을 팔았다. 새벽 5시에 여는 산호세 스왑밋의 자리를 얻기위해 LA에서 하루 종일 장사를 마치고 밤새도록 차를 몰고 올라가 가방을 팔았다. 5번 프리웨이를 올라가면서 졸음 운전으로 죽을 뻔한 위기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베니스와 벌링톤의 가게를 시작으로 3차례 확장 이전 끝에 2003년 다운타운 6가와 산타페에 13만스퀘어피트에 달하는 현재의 에베레스트 본사를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1997년 허리에 매는 패니백을 개발해 히트를 쳤는 데 디즈니랜드, 유니버셜 등 웬만한 위락공원의 관광객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에베레스트 패니백을 차고 다닐 정도였다. 도매업체에서 미리 입금을 하고 줄을 서서 물건을 가져갈 정도로 인기여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됐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스리랑카와 중국 등에도 제조공장을 차려 한때 1,500여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기도 했다. 현재 스쿨백팩, 패니백, 하이킹백, 토트백 등 120여 종류에 달하는 가방을 전 세계적으로 제조 및 도매유통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상호명은 어떻게 지었나
▲경남고와 외대재학시 산악부에서 활동을 했다. 미국에서 만난 한 대학동기가 ‘요세미티’라는 무역회사를 운영했는 데 상호가 참 마음에 들었다. ‘요세미티’ 상호에서 영감을 얻어 이왕이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를 상호명으로 정하고 ‘최고의 가방을 만들자’는 생각이 그 순간 뇌리를 스쳐 에베레스트로 회사 등록을 했는 데 마침 그 이름을 가방분야에서 쓰는 업체가 없었다. 1980년대 중반 정식으로 산의 디자인을 넣은 현재 로고와 함께 상표등록을 마쳤다. 비즈니스 아이템을 가방으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지만 상호명을 에베레스트로 정한 것은 산을 워낙 좋아하는 데다 최고의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가방에 자연히 곁들여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이 상표를 보호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신용을 최고의 가치로 고수했다. 혹시 같은 물건을 나중에 할인해서 판매할 경우가 생기면 그 전에 비싼 가격에 매입한 도매업체에 반드시 연락을 해서 크레딧을 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애프터 서비스로 손상된 가방을 가져와도 무조건 바꿔주었다. 당장 손해가 발생하는 것 같지만 믿고 거래하는 고객이 더 많아져 결국은 회사매출이 올라갔다.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았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자”라고 생각한다.
-평상시 건강관리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았다. 평생 저녁 10시반경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한다. 새벽에 이메일도 첵업하는 등 하루 일과를 점검하고 한국의 지인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파악을 한다. 일주일에 3~4차례 아침에 마운트할리웃을 하이킹하든가 동네 주변을 1시간 가까이 빠르게 걸으면서 건강관리를 한다. 20년 이상 당뇨를 끼고 살지만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당뇨로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노력한다.
-두주불사로 유명한데
▲일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게 마련이다. 술을 한 잔 하면 상대방과 가까워지고 대화도 편하게 할 수 있다. 술을 더 마시기 위해 하이킹을 매일 할 정도로 두주불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은 음주운전 때문에 술 마시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어서 그동안 동시픽업으로 집 한 채 값은 족히 들었을 것이다. 모든 술을 마다하지 않지만 와인을 더 즐기는 편이다. 사업을 할 때는 경비절감을 위해 꼼꼼하게 따지지만 술자리에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고 타운의 웬만한 애주가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정도의 주량으로 술자리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편안하게 어울리는 성격으로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 미셀 박 스틸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 데이빗 류 LA시의원의 기금모금파티를 프레몬트 집에서 열었는 데, 하나같이 기금모금후에 당선되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에베레스트 가방이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 지난 3월, 회사설립 35주년이 되었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에베레스트 가방이 팔렸는 지 잘 모른다. 아마 수억 개는 되지 않을 까 싶다. 특히 가방 제조로 전 세계적으로 수 천명의 고용창출효과를 내었다는 점에 보람을 느낀다. 현재 세계한인무역협회 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데 한국에서 이름을 대면 알만한 기업인들의 자녀들이 에베레스트에 와서 2~3개월가량 인턴십을 하는 동안 그들의 정신자세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뿌듯한 보람이 느껴진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2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 내가 이일을 왜 해야하는지 꿈을 갖도록 해주고 어떻게 해야하는 지 알려주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현재 장남 종현이 가업을 이어가기 위해 경영수업중이며 차남 경찬은 건축 회사에서 일하다 현재 대학원 진학을 준비중인데 에베레스트 본사 건물의 개발을 맡기려한다. 체력이 허용하는 한 일을 하겠지만 은퇴 후 독거노인과 고아 등 사회소외계층을 도와주면서 장학금 지급을 통해 젊은 인재를 양성하고 싶다. 평생 비즈니스를 하면서 몸으로 체득한 ‘하면 된다(Can do Spirit)’는 강인한 정신을 2세들에게 계승해주고 싶다.
■박병철 에베레스트 트레이팅 콥 회장 약력
1967년 한국외대 무역학과 입학
1973년 미쓰이 종합상사 서울지점입사
1977년 (주)삼화입사
1982년 에베레스트 트레이딩 콥 설립
1995년~1997년 남가주경제인협회장
2004년~2005년 남가주한국외대 동문회 이사장
2003년~2006년 남가주 무역협회 이사장
2006년~2007년 남가주 무역협회회장
2014년~현재 세계한인무역협회 이사장
2016년 ‘세계 한인의 날’ 한인유공자 포상(대통령상 표창)
<
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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