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입양 1972년생 한인여성, 애틋한 사연

친모를 애타게 찾고 있는 킴벌리 한씨. 왼쪽부터 입양 당시, 입양후, 현재의 모습.[연합]
“엄마, 저는 어느덧 엄마가 자랑스러워 할만한 여자가 됐어요. 저는 잘 지내고 있고, 엄마도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요. 저는 제 평생 엄마를 그리워하며 보내고 있어요.”
미국에 입양된 한인이 친엄마를 애타게 찾고 있다. 본명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지어준 이름은 오순희(여)이고, 미국 이름은 킴벌리 한이다.
오씨는 “제 친가족을 난처하게 만들거나 삶에 누가 되고 싶지 않다. 마음속에는 큰 구멍이 나 있다”며 “친가족을 알고 싶고, 특히 ‘엄마’를 만나고 싶다”고 21일 연합뉴스에 애틋한 사연을 보내왔다.
그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생년월일(1972년 6월9일) 밖에 없다. 태어난 지 48일 뒤인 1972년 7월27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인근을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했을 당시 붉은 꽃 자수 패턴이 박힌 흰옷을 입은 아이의 손에는 생년월일이 표기된 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발견 지점(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 6가 77)도 현재 주소 시스템으로는 정확히 알아낼 수 없다고 한다.
당시 그를 발견해 경찰에 인계한 시민은 ‘양남예’씨라고 홀트아동복지회 카드에 기록돼 있고 이름 옆에는 ‘40년’이라는 메모가 있지만, 그 숫자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신체 특징으로 그는 둔부에 쌀알 크기의 연성 섬유종이 있었다고 알려줬다. 지금은 수술을 통해 제거한 상태다.
경찰서에서 홀트아동복지회로 넘어오면서 그는 ‘오순희’라는 이름을 얻었다. 1972년 11월28일 서울을 떠나 미국 아이오와주에 입양됐다.
“성장하면서 한국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갈망이 피어올랐어요. 기초 한국어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K-팝과 한류드라마는 유행 초기부터 일찍이 푹 빠져들었죠. 한국이라는 나라와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수년간 계속됐습니다.”
24세 때 첫 아이를 낳고 싱글맘이 된 그는 친엄마 역시 싱글맘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가족이 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한국인과 재혼해 4남매를 둔 엄마가 된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뿌리가 더 궁금해졌고, 홀트아동복지회 등에 문의해 친엄마 찾기에 나섰지만, 허사가 되자 결국 언론의 힘을 빌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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