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자팍사 대통령 “13일 사임”… 총리도 동반 퇴진
▶ 시위대 10만 명 콜롬보 운집… 총리 관저엔 방화도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은 스리랑카 정부가 수개월간 지속된 반정부 시위에 백기를 들었다. 쌀 한 톨, 기름 한 방울 구할 수 없는 극심한 생활고에 분노한 시민들이 “정권 퇴진”을 외치며 대통령궁으로 몰려오자 대통령과 총리가 결국 권좌에서 내려왔다. 대통령 친인척들이 20년 가까이 정부 요직에 앉아 나라를 사유화했던 ‘가문 통치’도 막을 내렸다.
9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스리랑카 국회의장은 이날 밤 성명을 통해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이 평화롭게 권력을 이양하고 13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나라에 더는 소란이 일어날 필요가 없다”며 “모든 국민은 법을 존중하고 평화를 유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몇 시간 전에는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도 내각 회의를 소집한 후 “새 정부가 구성되면 정부를 떠날 것”이라며 사임 의사를 전했다. 반정부 시위가 연일 격화하는 데다 각 정당 지도부까지 대통령과 총리 모두에게 공식적으로 퇴진을 요구하고 나서자, 더는 버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과 총리가 물러나면서 아베이와르데나 국회의장은 스리랑카 헌법에 따라 최대 30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 의회는 30일 이내에 라자팍사 대통령 대신 임기를 채울 새 대통령을 의원들 중에서 선출해야 한다. 라자팍사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2024년까지 2년이다. 과도정부에는 여야를 불문하고 전체 정당이 참여하기로 합의했다.
올해 들어 스리랑카 경제난이 급격히 심화하면서 고타야바 라자팍사 대통령은 거센 퇴진 압박을 받아 왔다. 국민들 사이에선 특히 ‘라자팍사 가문 통치’에 대한 분노가 컸다. 2019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라자팍사 대통령은 2005~2015년 대통령을 지냈던 친형 마힌다 라자팍사를 총리에, 동생ㆍ맏형ㆍ조카를 장관직에 앉혀 놓고 나라를 마음대로 주물렀다. 정실 인사는 마힌다 재임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라자팍사 대통령도 당시 국방장관을 맡아 타밀족 반군과의 내전을 지휘하며 무자비한 학살을 저질렀다.
2015년 대통령 선거 패배로 물러났던 라자팍사 가문은 2019년 4월 무려 270명이 숨진 부활절 연쇄 테러 이후 ‘반무슬림’ 정서를 등에 업고 부활했다. 그러나 스리랑카에 닥친 극심한 경제난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했고 급기야 지난 4월에는 경찰이 실탄을 발사해 1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치는 유혈 사태까지 벌어졌다. 정국 수습을 위해 ‘라자팍사 장관’ 3인 등 내각이 총사퇴한 데 이어 5월 초 마힌다 총리마저 사임하고 위크레메싱게 총리가 새로 임명됐으나, 성난 민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20년간 스리랑카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라자팍사 가문의 종말”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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