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 퍼플』(The Color Purple)은 앨리스 워커(Alice Walker)의 대표작이다. 1982년 출간된 이 소설로 그녀는 흑인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여성들 사이의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운 연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자유와 해방, 그리고 구원의 가능성이 작품 속에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앨리스 워커의 세계관이 응축된 이 소설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며 더욱 널리 알려졌다. 영화의 첫 장면, 보랏빛 코스모스가 만발한 평원에서 자매가 손잡고 뛰노는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소설의 무대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에 이르는 미국 조지아주의 시골. 흑인 여성들이 겪는 폭력과 억압, 그 안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력과 서로에 대한 연대가 조용하지만 강하게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 셀리는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해, 서툰 글씨로 신에게 날마다 편지를 쓴다. 그녀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가혹했다.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해 겨우 열네 살에 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은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보내진다. 스무 살도 되기 전, 아버지에 의해 아이들이 딸린 남자와 결혼하게 되지만, 그 남편에게서 또 다른 학대를 받는다. 매일 폭력을 견디는 셀리에게 동생 네티는 싸우라고 하지만, 셀리는 조용히 말한다.
“나는 싸우는 법을 몰라. 남편이 때릴 때는 울지 않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결국 동생마저 셀리 곁을 떠나고, 남겨진 그녀의 삶은 무기력과 절망으로 가득 찬다.
그러던 어느 날, 셀리의 어두운 삶에 빛 한 줄기가 스며든다. 남편의 연인이자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슈그가 병으로 인해 그 집에 머무르게 되면서, 둘 사이에 특별한 우정이 싹튼다.
셀리의 인생이 바뀌는 진정한 전환점은 동생 네티로부터 온 편지에서 시작된다. 네티가 돌보고 있던 두 아이가 다름 아닌 셀리의 자녀들이었고, 자신이 아버지라 믿어온 사람은 사실 친부가 아닌 어머니가 재혼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결코 죄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안도하지만, 동시에 깊은 분노와 상실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절규하듯 묻는다.
“신이시여, 그동안 어디 계셨나요? 주무시고 계셨던 건가요?”
그 질문을 마지막으로, 셀리는 더 이상 신에게 편지를 쓰지 않는다.
셀리에게 신은 늘 백인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남자들은 모두 폭력적이고 이기적이며, 게으르고, 무책임했다. 백인 남성들은 아무 이유 없이 그녀의 가족을 해치고, 삶을 짓밟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의문을 던진다.
‘신이 불쌍한 흑인 여자의 말에 단 한 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세상은 이렇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녀의 유일한 친구이자 사랑하는 존재인 슈그는 셀리에게 속삭이듯 말한다.
“머릿속에 신이 백인 남자라고 떠오를 때는, 꽃이나 바람, 물, 바위를 떠올려 봐. 신은 세상의 모든 것이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존재하는 모든 것. 그걸 느끼고 그 느낌으로 충만해지는 순간, 너는 이미 신을 찾은 거야. 흘러가는 삶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그게 바로 신을 찬양하는 거야.”
이 깨달음은 셀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한때 폭력에 짓눌린 희생자였던 그녀는, 자신이 신성의 일부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마침내 자유와 기쁨을 되찾는다.
책 제목 『칼라 퍼플』은 작품 내에서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다음 문장에서 그 의미가 드러난다.
‘보랏빛으로 물든 들판을 지나면서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신이 화를 낼 거야.’
자연의 찬란함을 인식하고 기뻐할 수 있는 감각 ? 그것이야말로 해방의 출발점이며, 억압 속에서도 삶을 회복할 수 있는 힘이다. 작가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곧 자유의 증거라고 말한다.
결국 셀리는 자신감을 되찾고, 변화한 남편과 친구로서 지내게 된다. 사망한 줄 알았던 동생과 자녀들도 그녀 곁으로 돌아오고, 황혼의 삶 속에서 가족은 다시금 하나가 된다. 소설은 감동적인 재회의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여성 인권이 크게 향상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억압받는 이들이 존재한다. 셀리의 여정은 한 인물의 구원을 넘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유효한 메시지를 전한다. 절망의 순간에도 삶 속에서 보랏빛을 발견하고 기뻐할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자유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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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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