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제국’(Evil Empire)- 레이건 대통령이 냉전시대에 소련을 지칭했던 표현이다.
비슷한 용어가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후 등장한다. ‘악의 축’(Axis of Evil)이다. 9·11테러 직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핵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테러 지원을 하는 나라들을 이 용어로 하나로 묶어 지목한 것이다.
‘악의 제국’, 혹은 ‘악의 축’. 어떻게 불리든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할까. 그런 나라가 있다. 이란이슬람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이 그 나라다.
40년이 넘는 지난 세월동안 한 마디로 악한 짓을 도맡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러로 수백, 수 천 명이 희생된다. 전쟁에 준하는 군사적 갈등이 발생한다. 시시때때로 중동지역에서 일어난 숱한 유혈사태. 그 때마다 그 배후에는 신정(神政)체제 회교혁명정권 이란이 있었다.
하마스,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그리고 잡다한 근본주의 회교 무장 집단들이 그 하수인으로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으로 불리는 이 세력들을 이란은 조종해 피로 얼룩진 반미, 반이스라엘 그림자 전쟁을 전개해왔다.
‘이스라엘은 암적 종양으로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 2020년엔가.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한 말이다.
이스라엘 말살이 체제의 이데올로기라고 할까. 그게 시아파 회교 혁명정권의 정체성이다. 이 체제가 핵무기를 손에 넣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호 확증파괴이론(Mutual Assured Destruction-MAD)이라는 게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두 국가가 서로에게 핵 공격을 가하면 둘 다 모두 파괴된다는 전략적 교리다. 즉, 한 국가가 핵 공격을 감행할 경우, 상대국도 보복 공격을 가해와 자신도 파멸할 것을 알기 때문에 핵무기 사용을 자제하게 된다는 것으로. 이는 핵무기 시대의 대표적인 억지 전략으로 꼽힌다.
‘이 MAD 억지 전략도 광신적인 이란 회교혁명정권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적지 않은 관측통들의 지적이다. 왜.
이스라엘의 국토면적은 2만2000여 평방 킬로에 불과하다. 이란의 면적은 164만8000여 평방 킬로에 이른다. 무엇을 말하나. 핵탄두 두 셋이면 이스라엘은 말 그대로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 이란은 극히 부분적 피해만 입는다. 그러니 이란의 회교 신정체제의 광신자들은 이스라엘과의 핵전쟁을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찌 보면 이스라엘, 더 나가 미 제국주의 말살이 국시로 보인다. 지난 20개월은 그 회교혁명정권 이란의 이스라엘에 대한 그림자 전쟁 공세가 절정에 이른 기간이었다. 그 시작은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 가자지구에서의 하마스 테러공격이다.
하마스가 포문을 여는 것을 신호로 헤즈볼라. 후티 반군, 이라크와 시리아의 회교 무장집단 등 ‘저항의 축’세력은 일제히 이스라엘을 타깃으로 공세를 펼쳤다. 이스라엘로서는 생존이 걸린 상황을 맞게 된 것.
이스라엘은 마침내 전세를 뒤집었다. 하마스에 이어 헤즈볼라도 궤멸상황을 맞은 데 이어 이란의 지원을 받아온 시리아의 알아사드체제도 무너지고 만 것. 급기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방공체계가 파괴되는 등 ‘저항의 축’ 종주국 이란도 굴욕적 피해를 입게 됐다.
그러니까 지난 20개월의 기간은 이란 회교정권의 이스라엘을 타깃으로 한 장기적인 그림자 전쟁이 절정에 이른 동시에 이란의 약점도 여지없이 노출된 기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운명의 2025년 6월 13일. 이스라엘이 새벽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 공습에 나서 이란 핵과 군사 시설 등을 파괴하고 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 핵심 인사들과 핵 개발에 참여해 온 과학자 등을 일시에 제거했다. 이어진 것은 이란의 반격이고 재 공습이고…
미국과 이란이 핵협상을 진행 중인데도 불구하고 왜 이스라엘은 전격적 공격에 나섰나.
군사적으로, 또 정치적으로도 위기에 몰렸다. 경제도 말이 아니다. 그 가운데 회교신정체제에 대한 이란국민의 반감은 날로 확산되고 있다. 회교혁명정권의 통치기반이 근본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초조하다, 마지막 수단으로 회교 정권은 핵무장에 박차를 가했다. 결국 핵 완성 반보직전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과감한 선제공격에 나선 것이다. 광신적 회교정권의 핵무기 완성은 이스라엘 말살로 이어질 수 있는 실존적 절박감에서.
그 결과 대반전이 이루어졌다. 위기가 기회로 바뀐 것. 서방세계는 말할 것도 없다. 이란국민들도 진저리내고 있는 게 현 회교신정체제다. 완전히 코너에 몰린 그 시아파 회교혁명정권을 와해시킬 절호의 기회가 한 세대 만에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이 잇달고 있는 것이다.
시선은 이제 일제히 워싱턴으로 쏠리고 있다. 기왕 칼을 뺀 마당에 미국은 적극적인 이스라엘 지원에 나서 이란 핵시설 완전폐기를 돕고 더 나가 이란의 레짐 체인지를 유도할 것인가 하는 기대와 함께.
그렇게 되면 CRINKs, ‘새로운 악의 축’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그 충격파는 북한, 심지어 중국 등 다른 독재체제에도 밀려들어 지정학적 대변환이 발생 수도 있다는 게 뒤따르는 전망이다.
2025년 6월 13일은 다발성위기 시대를 맞아 어쩌면 역사의 한 굴곡점을 이루는 날로 기록될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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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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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하게 위험한 발상들을 하고 있다 여겨 지는 현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