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가 너무도 맑고 시원하다. 활짝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진보라 꽃잎에 흰 나팔관 몸통을 가진 나팔꽃 다섯송이가 한 줄로 서서 연주라도 들려줄 듯 손짓을 한다. 가을 노래가 들리고 있다. 나팔꽃들은 매일 위치를 바꾸며 가느다란 줄기를 타고 피고 지고 또 피어 오른다. 밤새 애태우던 꽃들의 꿈이 거기에 다 머물고 있다. 파란 하늘 한쪽에 하얀 구름이 새털처럼 퍼져나가다 다시 뭉치면서 양떼를 그리다가 그것도 마음에 안 드는지 다 지워 버리고, 그 밑에선 한 마리의 새가 창공을 맴돈다.
작년 봄 떡잎 두개가 난 나팔꽃을 우리 문학회원이 정성껏 모종해서 종이봉지에 담아 준 귀한 꽃이다. 집 뒤 텃밭 장미나무들 사이에 심었는데 언제 이렇게 자라서 초록 잎사귀를 장식하며 기다란 줄기가 장미 가지를 휘감고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 걸까. 화려했던 빨간 장미가 지나간 마음의 쓸쓸함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자라주는 착한 꽃이다. 어릴 적 우리집 화단에는 봉숭아꽃 옆에 맨드라미 그리고 그 옆엔 늘 진분홍 나팔꽃이 있었다. 담벽을 타고 다니던 나팔꽃은 사이즈가 좀 커서 트럼펫을 연상시켰고 늘 마음에 향기로운 추억으로 활력을 준다.
어느새 난 요셉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을 듣고 있다. 그 당시 트럼펫의 명 연주자 안톤 바이딩거를 위해 하이든이 작곡했다고 하지만 지금 연주하는 불란서 트럼페터 모리스 앙드레의 연주는 경쾌하면서 부드럽다. 특히 2악장 안단테는 마음이 힘들 때 평온의 쉼을 안겨준다. 오스트리아 작곡가이자 고전시대의 실내악 발전에 중요역할을 하며 교향곡의 아버지로 부르는 하이든은 총 106곡의 교향곡을 작곡해 고전음악시대의 교향곡의 틀을 마련했는데 1796년에 작곡한 이 곡이 마지막 작품이라 들었다.
고전시대 작곡가 중 하이든은 명확성, 형식성, 균형등이 특징으로 모차르트가 매우 존경한 작곡가였고 베토벤의 스승이었다. 그들 사이엔 예술적 자존심과 감정이 얽힌 복잡하고 흠미로운 인연이 있다. 하이든의 친구이며 멘토였던 모차르트는 안타깝게도 36세로 요절했다. 베토벤은 당대의 거장 하이든을 1792년 빈에서 처음 만나서 제자가 되었을 때 기쁨과 희망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실제로 하이든이 베토벤의 교육에 별 관심이 없었고 하이든은 베토벤이 자신의 말을 안 따르고 제멋대로 라고 고까와 했다. 자신과 성향이 너무 다른 하이든에게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베토벤은 1년만에 사제지간을 청산했다고 하지만 초기엔 그에게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났다고 한다. 모차르트도 그에게 헌정했지만, 실제 베토벤은 첫 피아노소나타 3곡을 작곡해서 런던여행시 하이든에게 헌정했고 공작 저택에서 직접 연주해서 베토벤의 재능과 열정을 높이 평가받았다. 베토벤이 하이든을 딛고 본격적인 대 작곡가의 반열에 설 수 있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성향은 아주 다르지만 서로가 배우고 영향을 주면서 더 나은 고전음악세계를 이루어 갈 수 있었을리라 믿는다.
세상 대부분의 음악이 자연에서 탄생한다. 작곡가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서 오선지를 펴고 작곡에 몰두하는 그림을 보았다. 각종 멜로디와 화성이 숨어있는 자연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멋진 오케스트라이다. 시들면서도 온 몸을 다 내어준 장미나무, 그 가지를 휘감고 기뻐하는 나팔꽃… 구름의 움직임,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하늘과 땅에서 나오는 신선한 멜로디와 화성, 또 그 느낌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운다면 모든 것이 신비롭게 들리고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순수하게 밝은 마음으로 서로 돕고 격려하고 양보하며 산다면 들리지 않던 맑은 소리도 들려오고 우리 삶도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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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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