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신문을 뒤적이다 여행가이드를 쭉 훑어본다, 세상은 넓고 갈 곳도 많은 나라의 명승지를 머리 속에 그려보며 이번 가을에는 가고싶은 곳을 꼭 짚어 찾아가 보리라 작정해 보지만 막상 여행을 떠나기란 쉽지가 않아 망설이곤한다.
누가 말했던가 여행은 “길위의 독서”라고. 여행의 맛을 아는 사람은 집안에 머무를 겨를이 없나보다. 한 모임에서 원탁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식사하는 자리에 어느 지인이 자신의 여행담을 늘어 놓는다. 그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인생철학이 달라졌노라고: 일년에 최소한 두번은 크루즈여행을 하고, 나머지 몇달은 멀리 또는 가까이 국내외를 비행기 나 혹은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노년의 풍요롭고 여유있는 시간을 “유유자적” 음미한단다. 팔십을 육박하는 나이에 겁없이 집 떠나는 용기와, 적잖은 경비와 긴 여행을 감당할수 있는 강건한 체력등이 뒤따라야 하는 조건을 두루 갖추어야 하는터라, 경청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경의로운 생각이 들 뿐이다.
그런가 하면,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 지인은 젊은시절 사업상 열정적으로 세계를 휘젓고 다녀 보았기에 지금은 조용히 도서관에서 틈틈히 빌려온 책을 벗삼는 재미로, 여행은 길위의 독서가 아닌 “집안의 독서”로 소일한단다.
젊은 시절의 추억에 빠져들게하는 것중 하나는 단연코 배낭여행이 아닌가싶다. 열정과 패기 하나만으로 좌우도 분간못한채 낮선 이국땅, 아일랜드로 여행길에 올랐던 그 시절: 더블린에서의 늦은밤 미쳐 숙소를 정하지 못해 해매고 있을때 이정표가 되어주던 어느 아저씨의 친절. 빠리의 신도시인 ‘라 데빵스’ 길거리에서 새벽 출근을 서두르며 자신의 얼굴만한 ‘소보로빵’을 들고 허름한 배낭을 맨 내 모습을 미소띈 얼굴로 손가락을 치켜 세워주던 빠리지앤. 고색창연한 영국의 켄터베리 대성당, 허물어져가는 일리 대성당의 뻥 뚫린 지붕을 사진에 담느라 애지중지하던 귀중품마저 분실했던 기억, 모두가 젊은 날의 값진 추억으로 남아있다.
약 삼십여년전 우연한 기회에 웨일즈의 최북단에 있는 콘웨이, 크나르폰, 펜린성곽을 흥미진진하게 둘러본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이 성곽들은 13세기에 앵글로 섹슨들이 웨일즈의 켈트족 반란을 제압하기위해 만든 것이란다. 앵글시섬과 웨일즈를 연결하는 메나이. 브리지가 불타는 석양을 받아 물위에 비치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되돌아보면 팔십이란 세월은 잠간 사이에 흘러 간듯하다. 어쩌다 취미삼아 글쓰는 재미에 빠져들었지만 때로는 집이라는 비좁은 공간을 벗어나 넓은 “길위의 독서”가 내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리라는 생각이 들곤한다. 이 가을에는 확실하고 실천 가능한 여행지를 찾아 길위에서 이곳저곳 기웃거려보고 싶다. 낙엽의 속삭임이 잦아들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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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메리옷츠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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