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에서 온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필자는 아심 무니르 육군참모총장의 종신사면권을 인정하는 등 군부 실세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이슬라마바드의 최근 결정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자 “우리는 그저 미국의 전철을 밟고 있을 뿐”이라는 예상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이어 “당신네 대법원은 대통령이 정적을 살해해도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다고 판결하지 않았느냐?”는 팩폭이 이어졌다.
이처럼 견제받지 않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은 미국 민주주의의 최신 수출품이다. 미국을 건국한 국부들이 돌아와 자신들이 남긴 유산을 살펴본다면, 그들은 분명 현대적 대통령제에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 미국의 정치시스템을 설계할 당시 건국의 아버지들은 무엇보다 권력의 분산을 염두에 두었다. 그들은 군주제와 “동일한 한 사람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에 반대”했다. (연방주의자 논문 47호). 국부들은 의도적으로 분권하되고 절제된 행정부를 구상했는데 그들의 의도는 특이하리만큼 짤막한 연방헌법 II조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대통령직은 “충실하게 법을 집행하는 지위로, 입법부와 사법부의 면밀한 견제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의회는 정부의 제 1부로 지목되었으며 세금부과, 지출, 전쟁선포와 상업 규제에 관한 권한을 부여 받았다. 사실상 헌법의 실질적인 기초자인 제임스 매디슨은 연방주의자 논문 51호에서 이같은 사실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며 “공화정에서는 입법권한이 필연적으로 우위를 차지한다”라고 썼다.
제왕적 대통령직을 촉구했던 인물로 알려진 알렉산더 해밀턴조차 대통령에게는 국왕이 행사하는 권한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연방주의자 69호 논문에서 그는 영국 국왕을 미국의 대통령과 대조시키며 후자는 단지 4년 임기의 선출직이며 재임중이라 하더라도 “개인적인 처벌과 치욕”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게 조약에 대한 자문과 동의를 제공하고, 전쟁을 선포하며 군을 징집하는 권한이 주어졌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의 외교정책권이 대부분 군사명령으로 제한된 이유에 대해 해밀턴은 연방주의자 논문 75호에서 “탐욕스런 사람이 부를 축적하기 위해 국익을 배신할만한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야심만 만한 사람은 외국세력의 지원을 등에 엎고 유권자들에 대한 배신의 대가로 자신의 권력확장을 꾀할 수 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 이렇듯 정교하게 짜여진 매카니즘은 작동을 멈췄다. 전쟁과 경제위기, 그리고 언론의 국유화와 집중화 경향은 대통령의 권한을 끊임없이 확대하며 견제받지 않는 일방적인 권력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같은 극적인 불균형은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의 헌법적 위기 상황에서 정점을 찍었다. 1970년대 들어 초당적인 분노를 동력삼아 활성화된 의회는 마침내 대통령의 과다한 권력을 제어하기 위한 일련의 법을 통과시켰다. 예를 들어 1978년에 제정된 감찰관법은 정치적 보복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전제하에 낭비와 사기를 근절하기 위한 내부 감시기구를 만들었다.
이런 견제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의회는 전쟁권한 등을 통제하기 위한 법적기준을 마련했지만 대통령을 여기에 묶어놓을 집단적인 정치적 의지가 부족했다. 더구나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 결의안은 이러한 제약을 사실상 무력화하면서 대통령에게 군사력 사용에 관한 전권을 부여했다.
법적 제약 이외에 리처드 M. 닉슨 대통령 이후 양당은 강력한 규범의 집합, 이를테면 법무부와 백악관 사이에 방화벽을 설치해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에게 특정한 개인을 조사하거나 사법처리하라고 지시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여기에 보태 대통령들은 자발적으로 세금보고서를 공개하고 개인 자산을 백지신탁에 넣었다. 이는 군최고통수권자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이권을 챙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마련한 재정적 투명성 제고 조치였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제약들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기괴한 단일 행정부 이론을 바탕으로 대법원이 직접 나서 가장 심각한 대통령의 위반사항들까지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한때 주변적인 법리에 불과했던 단일행정부설은 헌법 2조에 명기된 구절을 근거로 대통령에게 행정부를 통제하는 무제한적인 권한을 부여한다. 나라의 돈지갑을 통제하고 기관과 부처를 창설하며 그들의 구조와 기능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기관의 예산사용처를 지시할 권한이 명시적으로 의회에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단일 행정부설은 설령 의회의 구체적인 의도와 어긋나더라도 대통령이 실질적인 무한권력을 행사해 해당기관들을 운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행정권 확대는 2024년 ‘트럼프 vs. 미합중국’ 재판에서 나온 대법원의 결정으로 극에 달했다. 당시 대법원은 대통령들의 경우 그들의 ‘핵심적인 헌법권한’ 안에서 취한 행동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면책권을, 그 외의 다른 모든 ‘공식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최소한) 추정면책권을 갖는다고 판결했다. 이에 맞서 소니아 소토메이어 대법관은 이 기준에 따라 대통령이 SEAL팀 6에게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라고 명령한다 해도 그 지시가 공식채널을 통해 주어진 것이라면 형사적 책임을 면제받게 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미국의 대통령직은 온건하고 헌법적으로 제약된 직위에서 온전한 관심과 권력을 행사하는 수퍼 대통령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권력을 극단으로 밀어붙이고 있긴 하지만 정치적 용기를 결여한 의회와 원래의 의도와 전례에 대한 존중을 상실한 이념석인 대법원이 그를 돕고 있다. 그 결과 정부의 1부인 의회는 이제 가장 약한 부로 전락했고 대법원은 거수기의 위치로 떨어지는 구조적 비대칭성이 자리잡았다.
사법부는 그들이 명백이 알고 있는 사실, 즉 대통령은 멋대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없고,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하거나 제거할 수 없다는 점을 역설함으로써 국정최고 책임자의 권력죽적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 대통령은 제한된 입헌정부의 전형이 아니라 250년전 미국의 국부들이 반대했던 영국 국왕 조지 3세 보다 훨씬 더 무절제한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로 전 세계에 알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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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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