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듣는 이야기로 옛부터 한국의 농촌에서는 가을에 감나무에서 감을 따면서 그 중 몇 개는 따지 않은 채 나무에 그대로 남겨 두었다고 한다. 나중에 까치가 날아와서 남아있는 감을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동물에게도 이렇게 세심한 배려를 했던 우리네 인심이었으니 사람에게는 더 할 나위가 없었다. 웬만한 집에서는 밥 한, 두그릇은 여유있게 해 두었다가 불시에 찾아온 사람을 배고프지 않게 했다. 지나가던 과객에게도 밥과 잠자리를 주었고 오갈 데가 없는 사람은 일자리를 주었던 것이 우리네 인심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그런 후한 인심이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돈이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자본주의 탓 때문인지, 사람들은 돈을 버는데만 급급해졌다.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데 더 몰두한다. 벼룩의 간을 빼 먹는다는 말처럼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의 것 마져 빼앗아 가는 세상 인심이 되었다. 사람들의 삶이 과거보다 윤택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인심이 사나워진 것은 마음이 각박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에게 무엇을 준다거나 베푸는 것이 결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사람에게 무엇을 주었을 때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올 것인가를 미리 계산하는 것이 요즘 세태이다. 뇌물을 주어 사업상 이익이나 승진을 꾀하고 선물도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는 계산에서 오고 간다. 무엇을 줌으로써 다른 것을 받으려고 의도하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무엇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이나 힘없는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 무엇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더 준다면 효용가치가 그렇게 크지 않다. 반대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준다면 그 가치가 매우 크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처럼 배부른 사람에게 밥을 주면 고맙다는 말을 못 듣게 된다. 반대로 허기에 지친 사람에게 밥을 주었을 때는 눈물의 보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가뭄에 단비를 주는 것처럼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자선의 손길이 필요하다. 자선은 사람이 사는 사회를 지탱해 주는 일종의 소득 재분배이기도 하다. 경제관계를 통한 1차 소득분배가 실현된 후에도 경제적 불균형이 발생하기 때문에 고대와 중세에는 지연혈연체안의 구제방법이 널리 이루어졌다. 현대에는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2차 소득분배가 이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다. 자선은 이 갭을 메우는 3차 소득분배라고 할 수 있다. 수확이 끝난 보리밭에서 그 이삭이라도 줍도록 하는 그런 구제인 것이다.
삭막한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훈훈한 인정도 없지 않다. 평생동안 삯바느질을 하여 모은 거금을 가난한 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놓은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남을 돕는 선행의 주인공도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사할린 귀국동포 마을에 김장감을 대주는 사람이 있어 화제를 모았다.
불우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자선은 보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므로 남을 도왔다는 사실이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요즘에는 교회에서 헌금을 하면 주보에 이름은 물론 금액까지 발표되는 세태이지만 예수는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쳤다. 또 불교에서도 요즘은 불공이나 불사 때 금전이나 물품을 내놓는 것은 보시라고도 하지만 보시의 참뜻은 자비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에서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병든 사람에게 약을 주는 것 만큼 착한 일은 없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선물을 주고 받는다. 그런데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나 체면치례를 하기 위해 선물을 주는 것 보다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온정의 손길을 준다면 이 연말이 얼마나 보람있는 연말이며 그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이겠는가. 금년 연말이 그런 인정으로 가득찬 세상이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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