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나 오늘이나 다 똑같은 날이지만 사람들은 지난해와 새해를 정해놓고 각오와 희망을 새로 가질 기회를 만들고 있다. 이 새해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시기에는 멀리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늘 집과 직장, 그 사정거리 안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서너 시간 이상 떨어진 한적한 시골, 별로 익숙치 않은 환경, 처음 보는 얼굴들 틈에 잠시 머물렀다가 돌아오면 기분 전환, 감정 전환이 된다.
연말에 워싱턴 D.C.를 다녀오며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수없이 하고 밤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뉴저지 턴파이크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오면서 엘리자벳, 뉴왁 공항 인근에 이르자 다소 어둡던 고속도로 양쪽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밤하늘이 선명하게 살아나는 것이었다. 빌딩과 공장 건물들에 켜진 불빛은 화려하고 웅장하기까지 하여 살아 꿈틀거리는 도시를 보자 와락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은퇴하면 속세를 떠나 산 속이나 바닷가에서 명상의 세계 속에 살고싶다는 것은 그냥 꿈으로만 남을 것인지? 복잡하고 활기찬 도시의 밤 풍경만 보아도 좋은 것을 보니 아직 젊어서인지?
한국이나 타주로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갔다 올 때도 그렇다. J.F.K. 공항에 내려 집으로 콜 택시를 타고 들어오며 노던 블러바드의 메인 스트릿 거리에 들어서면 얼마나 마음이 푸근해지며 내 동네, 내 집에 드디어 왔다는 기분이 드는 지 모른다.
이러한 익숙하고 편한 감정은 그 거리 구석마다 정이 들었고 무언가 사람과 함께 한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래서 반가울 것이다.
뿐인가 한 해가 시작되며 화사한 꽃잎이 서로 시샘하듯 앞다투어 망울을 터뜨리는 봄, 풀어헤친 풍성한 머리카락처럼 녹음이 무성한 여름, 바람이 불면 낙엽 비가 천지사방으로 떨어져 내리는 가을, 고즈넉한 숲 나뭇가지에 말없이 누워있는 새하얀 눈이 내 앞에 펼쳐질 것이다.
사계절이 확실한 자기 성격을 드러내는 뉴욕에 산다는 것이 행운이고 올 한 해도 이 사계절이 오롯이 내 앞에 주어졌다는 기쁨이 새해 벽두를 즐겁게 한다.
하지만, 사는 것이 너무 빡빡하고 지루하고 힘들긴 하다. 결코 만만한 세상은 아니다.
테러 사태 여파로 한인경제의 매출이 대폭 감소되고 무능과 부패, 탐욕과 위선이 판치는 한국 소식이 마음을 어둡게 하고, 지구상에는 재난과 유혈사태가 계속 되고 주위에 걱정거리는 산재해 있다.
그리고 지난 2001년이 그랬던 것처럼 늘 상상도 못했던, 꿈에서라도 본 적 없는 일이 올해에도 생길 수 있다.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기로 예정되었다면 막을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절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줄을 붙잡을 수 있는 것도 나고, 살맛 나는 세상을 이끌어 가는 것도 나다. 작은 불편이나 고통쯤은 고요히 삭힐 수도 있어야 한다.
또, 지난 세월동안 별로 후회할 것이 없는 사람이라도 돌이켜보면 가장 아쉬운 것이 좀더 위해주지 못하고 좀더 좋아하지 못하고 좀더 사랑하지 못하고 좀더 정성을 다하지 못했음이 아니었던가.
올해에는 내가 사는 이곳에 애착을 갖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더욱 좋아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사랑해 보자. 그러면 괴롭지만 그런 대로 살만한 세상이 된다.
천상병의 시 <귀천>(歸天)이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우리도 이 시인처럼,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참으로 잘 살다간다"는 말을 남길 수 있게 살아보자.
올 한 해도, 맑고 뜨거운 심성으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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