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우리가 같은 동포이기 때문에 한국의 국내인들과 습관이나 감정이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생활을 해보면 의외로 외국이라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커피를 마시는 습관 한가지 면에서도 그러한 차이를 발견 할 수 있다.
나도 많은 사람들처럼 커피를 좋아한다. 특히 아침에 마시는 첫잔의 커피는 하루중 최고이다. 미국에 사는 좋은 면 중 한가지는 어느 곳에서도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개스 스테이션에서 파는 커피도 경쟁적으로 질을 높여 피할 이유가 없다.
나는 개인적인 일로 서울에서 수개월을 보낸 적이 있었다. 서울생활에서의 불편함 중 하나는 미국수준의 커피를 맛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서울에는 현대적 인테리어로 잘 디자인된 커피샵이라는 것이 곳곳에 있어 만남의 장소로 편리하다.
나는 처음 한동안은 메뉴를 통해 아메리칸 커피라는 것을 주문했다. 미국 커피를 서울에서도 마실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된 주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어느 곳에서나 커피인지 보리차인지 알 수 없는 정도로 묽은 커피를 주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묽은가 하면 찻잔의 바닥이 훤히 보이는 정도였다. 불만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곳의 커피는 좀 낮겠지 하는 기대는 언제나 무산되었다. 그럼에도 가격은 매우 비싸서 미국 돈으로 3달러 정도에 이르니 속임수를 당한 것 같아 불쾌하기도 했다.
하루는 한 백화점내의 커피샵에서 정도가 심한 보리차 같은 커피를 주기에 왜 이렇게 커피를 묽게 주느냐고 항의 섞인 질문을 했다. 그것은 아메리칸 커피이기 때문이란 짧은 대답이었다. 그래서 왜 아메리칸 커피는 이렇게 묽게 주느냐고 다시 물었다. 대답은 철저히 기대 밖이었다. 아메리칸 커피는 미국식 커피이고 미국인들은 이렇게 연한 커피를 마신다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갑자기 머리속이 텅 비는 느낌을 받았다. 잠시 멍하니 있다, 그러면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무엇을 주문하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브랜드 커피를 주문하라는 것이었다. 브랜드 커피는 만족스런 정도는 아니나 그런 대로 마실 만은 했다. 그러면서도 아메리칸 커피는 무엇이고 브랜드 커피는 무엇인지 그 정의가 도저히 짐작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는 커피샵만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다방이라는 고전적 이름을 가진 곳이 여전히 버티고 살아남아 있었다. 그러나 최백호의 노래 속에 나오는 그런 짙은 립스틱 바른 마담과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추억의 다방의 모습은 아니고 조금 격이 낮은 커피샵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다방에서도 물론 커피를 제공한다. 그러나 커피샵의 커피와는 질이 다르다. 이곳에서는 한국에서 인스턴트 커피라고 부르는 물을 끓여 가루커피를 타 주는 것을 제공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인스턴트 커피는 맥심 커피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맥심 커피에 대응되는 커피샵에서 파는 미국식으로 내리는 커피는 원두커피라고 부른다.
한국에서의 사무실에서도 미국처럼 커피 접대를 많이 한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설탕과 크림을 친절하게도 사전에 모두 섞어준다. 이런 경우 안마실 수도 없고 마시기에는 고통스럽고 하던 경험이 있었다. 이렇게 커피 마시기가 까다로운 나는 내 책을 출판해주던 출판사에 가면 언제나 녹차를 요구했다.
왜냐하면 커피를 요구하면 커피와 설탕과 크림이 이미 섞여 있는 봉지 속의 커피를 타 주는 결정적 정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출판사의 직원으로부터 “선생님은 미국에 사시면서도 커피를 좋아하지 않으시나봐요” 하는 질문을 받고는 어떻게 대답을 하여야 하는지 망설이다 그저 “네” 하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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