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설렌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험준한 심심유곡 산자락에 도도히 자라다가 효심이 극진한 효자에게 산신령이 내려주는 선물이라는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내일 산삼을 캐러 간다는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6시, 안개가 자욱한 80번 하이웨이를 달려 20년 간 산삼을 찾아 다녔다는 장기남씨(시카고 이회창 후원회장)와의 약속장소로 향했다. 새벽 7시, 장씨를 만나 가볍게 아침식사를 함께 한 뒤 우리는 심마니의 설레는 마음을 안고 일리노이 서부에 위치한 스타브드 락 주립공원으로 향했다.
시간 반 가량을 달려 해발 1천미터 정도되는 곳의 공원 어귀로 들어서니 이제 단풍맞을 준비를 끝낸 산자락이 제법 붉으락 푸르락했다. 오랜만에 보는 산세가 반가웠다. 선산을 찾아 조상들게 성묘하던 한국에서의 추억도 생각났다.
차를 주차한 후 우리는 본격적인 산삼 찾기에 나섰다. 주머니에는 모기를 쫓기 위한 라임 2개와 허리춤에는 흙을 파기 위한 작은 쇠꼬챙이를 찼다.
장씨가 준비해 준 산삼 사진을 목에 걸고 배낭을 맨 뒤 산을 향했다.
젊어서 시카고에 정착한 그는 가족들과 틈 날 때마다 캠핑을 즐겼다고 했다. 캠핑을 가서는 꼭 근처 산자락을 둘러보며 산삼이 나올만한 곳을 찾아 온 세월이 20년, 20년간 장씨가 발견한 산삼 서식지는 위스칸신과 인디애나 일리노이주에 서너 군데 정도다.
장씨는 “부모님 살아계실 때는 산삼을 캐 부모님을 찾아뵈면 무척좋아하셨는데....”하며 여운을 남긴다. 곧 우리는 산삼이 있을만한 장소를 찾아 산어귀로 들어섰다.
장씨는 산삼서식지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첫째 햇빛이 1시간 이상 들지 않는 북향이나 서향의 산세를 가질 것. 산삼은 햇빛을 오래 받으면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산이 물을 향하고 있는 지형일 것. 산삼은 배산임수형 명당자리에서 잘 자란다는 것이었다.
서유구가 쓴 ‘임원십육지’에는 산삼의 성질과 생육할 수 있는 환경을 꽤 상세하게 기록하였는데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삼이 나서 자라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삼은 물을 좋아하나 습기를 싫어하고 그늘을 좋아한다. 삼이 싹이 나더라도 땅 위가 마르고 흙에 물기가 많으며 부식토가 얕거나 햇볕이 세게 쪼이거나 바위 그늘에 가려 햇볕이 전혀 없으면 자라지 않는다. 흙이 기름지고 빛나며 숲이 우거져 키 큰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산란광으로 가늘게 흩어져 들어오는 곳이어야 하는데 이런 곳에서 싹이 나더라도 잘 자라는 일은 드물다."
셋째로 사슴이 뛰노는 곳이어야 한다. 사슴은 산삼잎사귀를 무척 좋아해 사슴이 없는 곳에는 산삼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들으며 한참을 산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자 장씨가 산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본격적인 산삼찾기에 나선 것이다.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라임을 잘라 온 몸에 바른 후 천천히 사방을 훑었다. 한 발 한 발을 천천히 움직이며 주위의 풀잎사귀를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3지5엽(산삼은 1개의 줄기에서 뻗어 나온 3개의 가지에 5개의 잎사귀가 달려있어 3지 5엽이라고 표현한다) 산삼은 기자의 눈에는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 시간 가량이 흘렀다. 나 같은 초자의 눈에 산삼이 보인다면 산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장씨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산삼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장씨가 가리키는 곳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손바닥 모양의 큰 잎사귀 세개와 작은 잎사귀 두개가 세개의 가지에 선명하게 달려있는 것이 보였다. 주위의 잡풀과는 다른 약간 연한 빛을 띤 산삼잎이 지상에서 약 20센티미터 정도 솟아 나와 있는 것이었다.
장씨는 천천히 손으로 줄기 주변을 정리한 후 흙을 파기 시작했다. 맨손으로도 파질 정도로 부드러운 낙엽토였다. 20센티미터 가량을 파 내려가다 보니 산삼의 머리부분인 뇌두가 가늘고 긴 모습을 드러냈다. (몸통 위에 직접 싹이 나는 부분을 뇌두라고 하는데 뇌두는 마치 대나무처럼 가는 마디로 이어져 있어 그 나이테를 보면 산삼의 나이를 알수 있다). 뇌두 끝을 따라 몸통, 잔뿌리로 이어지는 검지 손가락 만한 산삼이 검붉은 흙 사이로 우윳빛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장씨의 말로는 적어도 5~60년은 되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심봤다~”라고 외치지는 못했지만 말로만 들었던 신비로운 산삼을 찾았다는 감격이 밀려왔다.
예로부터 산삼은 기사회생의 명약으로써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숨이 막 넘어가는 사람이 산삼을 먹고 다시 소생하여 수십 년을 더 살았다는 얘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산삼으로 나병을 고쳤다는 얘기도 있고, 당뇨병·성병·아편중독·고혈압을 고쳤으며, 산삼을 먹으면 평생 추위를 안 탈뿐 아니라 눈이 밝아져 안경을 쓰던 사람도 안경을 벗는 일이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강과 산이 어우러진 스타브드 락에서 산삼을 찾으며 보낸 한 나절동안 우리는 산신령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우리는 차에 올라 다시 속세로 향해 발길을 돌렸다.
이형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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