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를 크게 나누어서 생존에 필요한 부분과 그 이외 부분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기본 의식주가 누구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필수요건이라면 나머지는 일종의 사치에 속한다. 농업혁명과 산업개발로 빈곤층 절대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는 하지만 오늘도 극빈자 계층이 절대다수인 대륙이 있고 내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국민들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들도 있다. 역사상 정치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경제적으로 제일 앞선 미국에서조차도 4인 가족 연 수입 18,000달러 이하로 규정된 미국 빈곤기준(아프리카인의 눈으로는 상류층)을 적용했을 때 빈민층이 전체인구의 12%나 된다.
남에게 자랑하기 위한 소비 심리는 과시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의 기본이다. 어떤 물건을 필요에 의해 구입하기보다는 그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한테 알리고 차별화 함으로서 자신의 부를 노골적으로 세상에 알리는 천박성에서 과시소비가 시작한다. 심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중상류 계층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1990년대 말기에 부정한 수단으로 최상급 소득계층에 속한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현상 하나는 남의 돈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소비행각을 즐기는 놀음이다. 뇌물 챙기기에 비상한 재주를 가진 한국과 후진국의 일부 권력자들과 회계 부정을 통하여 불법으로 치부한 미국의 최고 경영자들이 애용한 변태 소비행위의 한 형태를‘까짓 것’소비
(contemptuous consumption)라고 이름을 지어 부쳐보자.‘까짓 것’소비자들은 남의 소유를 절대로 존경하는 법이 없고 남들의 돈은 오로지 자신의
변태소비를 만족시켜 주기 위하여 존재할 뿐이라고 믿는다. 이들이 가진 가
장 두드러진 특징은 소유의 즐거움을 만족시키거나 충족시키자면 막대한 비
용이 소요되는 고상한 수집벽 따위는 아예 찾아 볼 수도 없다는 점이다. 연
쇄살인범이 거의 취미로 사람을 죽이듯이 돈을 쓰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
딜 수 없는 심리가 깔려있다.‘까짓 것’소비자의 중요한 목표 하나는 자신
과 비슷한 규모의 부를 가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는 일이다. 이들이
경멸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화폐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들은 난폭하
게 돈을 허비함으로서 무언가에 복수하고 있다고 느낀다.
네로(Nero)급‘까짓 것’소비자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최근 회계부정으로
시끄러운 타이코(Tyco)사의 사장이었던 데니스 코즈로우스키(L. Dennis
Kozlowski)이다. 이 사람의 소비성향과 규모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01
년 6월 부인의 40세 기념 생일파티를 이태리의 한 섬에서 열었는데 그 파티
경비가 자그마치 210만달러나 들었다. 파티 비용이 전액 본인 부담이었다
면 옆에서 콩이냐 팥이냐 하며 따질 것조차도 없는 일이겠으나 그 경비의
절반을 회사에 떠맡긴 데서 문제가 비롯됐다. 100명이 초대된 이 자리는 로
마 제국시대를 재현한 호화판의 극치였다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그는 뉴욕
의 5번 가에 있는 아파트의 샤워 커튼 6천달러, 골동품 변기 1만7천달러,
마당 피크닉 테이블용 우산 받침대 1만5천달러, 그리고 침대 시트 6천달
러...이 모두를 회사 돈으로 사들였다. 이렇게, 저렇게 불법으로 뜯어낸 회
사 돈이 무려 6억달러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까짓 것’소비에 탐닉한
사람들은 돈을 버리는 재미로 쓴다. 코즈로우스키는 수천만 달러에 상당하
는 명화도 사들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데(그가 처음 법망에 걸려든 것은
그림들을 산 뒤 수 백만달러의 세일즈 택스를 안 낸 것이었음) 자신은 무
슨 그림을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남에게 부탁해 산 것들이기 때문에 상당수
는 전혀 예술적 가치가 없는 작품들인 모양이다.
유명 영화배우나 가수들의 취미와 소비성향을 사치의 대명사쯤으로 알았던
일반 대중들은 최근 회계 부정 부산물로 들통 난 일부 회사 최고 경영자들
의 생활 패턴이 밝혀진 후로는 입이 딱 벌어졌다. 순진한 일반 대중은 그들
이 회사 고용원 신분임을 잊고 행한 주객이 전도되는 각종 행위와 거의 백
치수준에 가까운 흐린 판단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의 몰지각한 행동이 수많은 주주들을 망하게 했음은 이제 세상이 다 아
는 일이다. ‘까짓 것’ 소비자들 때문에 세계 주식시장이 몰락 위기에 직면
해 있으며 자본주의 근간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사실은 엄청난 불행이 아
닐 수 없다. 이 같은 커다란 충격 뒤에 시장이 회복되기란 여간 힘겨운 일
이 아니어서 수많은 선량한 국민들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동안 이들이 남긴
상처 뒤치다꺼리만 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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