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후보인 노무현씨가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부시 행정부의 한국 정책에 기회와 도전을 함께 안겨 주었다.
노 당선자가 선거 유세기간에 밝힌 정책 입장들을 보면 이번 선거가 ‘반미’와 ‘북한과의 조건 없는 교류’를 지지하는 측의 승리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이 2가지 요소는 모두 기존의 한미 동맹관계를 저해할 소지가 있다. 하지만 양국이 공통분모를 도출해 낼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그럴 듯한 이유들도 있다.
노 당선자는 대선 기간에, 인권변호사로서 노동운동가로서 그는 한국 역대 친미정권들에 맞서 투쟁한 사람으로 묘사됐다. 정말로 그는 냉전체제 아래서 미군 철수를 주장했던 사람이다. 친미 성향의 라이벌 이회창 후보와 대조적으로, 노 당선자는 미군 장갑차에 의한 한국 여중생 압사사고를 다루는데 있어서 보여준 미국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고 이는 성난 유권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을 반미의 승리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설득력 있는 이유들이 있다. 노 당선자는 과거 자신의 반미 발언이나 주장과 관련해 마음이 변했음을 드러냈다. 당시에는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민주화를 열망하는 운동가로서 반미를 외쳤기 때문이다. 이제는 특정 지역이나 세력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가야 할 입장이다. 그러므로 노 당선자의 대미관에 변하는 것은 불가피 하다.
지난 5년간 한국을 이끌어온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도 처음엔 이와 유사한 우려가 제기됐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한국 역사상 가장 친미적인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감해 가고 있다. 노 당선자는 보다 큰 변화를 겪어야만 할 것이다.
한국은 그다지 친분이 두텁지 못한 강대국에 인접해 있는 작은 나라다. 동아시아에서의 이 같은 상황은 한국으로 하여금 미국과의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할 것이다. 한미 우호관계의 의미는 이미 역사가 이를 입증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 한미 양국이 큰 시각 차를 보이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노 당선자는 유세기간 내내 햇볕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부시 행정부가 견지하고 있는 조건부 협상이나 강경책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이 차이는 충분히 조율될 수 있다. 이라크와의 전쟁준비에 혈안이 돼 있는 미국으로서는 북미 교착상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 남북 경제교류를 진작함으로써 북한이 미국의 핵확산 금지정책에 동의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한국인의 인식과는 달리, 노 당선자는 자신의 공약에 너무 얽매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출구조사에서 한국 유권자들은 대북 정책이 표심을 결정하게 된 요인 중 4번째 순서밖에 안 된다고 답했기 때문 이다.
한미 양국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가 부시 행정부가 자족해도 좋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북한의 위협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던 지난주 한반도에서 오히려 반미시위가 확산된 점을 생각해 보면 미국이 맘을 놓고 있을 국면만은 아니다. 이라크에 빠져 있는 부시 행정부는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이번 한국 대선 결과를 새로운 한미관계 정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다른 일도 많겠지만 한국의 새 지도자를 워싱턴으로 초청해야 한다. 이것이 관계 개선을 위한 첫 조치이다. 중동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더라도, 부시는 한국 문제를 전담할 고위 정책 조정관을 임명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조정관은 한국의 새 지도자와 대북 정책을 수립하고 한미 동맹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새 정부 출현으로 야기될 수 있는 도전을 기회로 바꿔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빅터 차/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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