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유력시되다가 끝내 못 받고 숨진 사람 중 대표적 인물이 그레이엄 그린이다. 영국 정보부에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한 그의 작품은 스릴러이면서도 세계에 대한 통찰과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 ‘조용한 미국인’(The Quiet American)이 최근 영화로 만들어져 주목을 받고 있다.
50년대 초 베트남을 무대로 ‘낡은 유럽’을 대표하는 타임스 기자 파울러와 ‘젊은 미국’을 대표하는 구호 요원 파일, 이 두 사람의 애인이자 월남을 상징하는 푸옹(鳳)의 3각 관계를 다룬 이 이야기는 월남의 운명을 정확히 예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주연을 맡은 마이클 케인은 일생일대의 연기로 남우주연 부문 오스카 상 후보에도 올랐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월남을 돕기 위해 파견된 파일은 실상 CIA요원이다. 프랑스도 월맹도 아닌 월남의 제3세력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그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높이기 위해 이들의 소행인 것처럼 테러를 저지르기도 한다. 파일은 결국 그의 이중성과 애인을 뺏긴 데 대한 분노를 이기지 못한 파울러의 밀고로 베트민 요원들에 의해 암살된다. “그처럼 동기가 순수했으면서 그처럼 많은 문제를 일으킨 인물은 그가 처음”이라는 게 파일에 대한 파울러의 평가다.
OSS를 전신으로 하는 CIA는 1947년 창설된 이래 미국의 국익이 걸린 분쟁 지역이면 제일 먼저 뛰어 들어가 첩보와 공작을 펼쳐왔다. 1953년 이란의 모사데그 정권을 쿠데타로 전복하고 팔레비를 옹립시킨 일이나 다음해 과테말라에서 좌파 정권을 무너트리고 군사정권을 세운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60년대에는 도미니카의 독재자 트루히요를 암살하는 것을 도왔으며 월남전 때 특수 지원부대를 조직하는가 하면 80년대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중남미에서 반공 게릴라를 지원하는 역할도 맡았다.
제2의 걸프전이 임박한 가운데 이미 CIA를 비롯한 특수부대 요원들이 이라크 북부와 남서부 일대에 잠입해 게릴라 부대를 조직하고 군사 거점을 마련하는 등 활동에 들어갔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이미 전쟁은 시작된 상태나 마찬가지다.
이번 전쟁을 지난 번 걸프 전 때와는 달리 수주간 폭격 후 지상군 투입이 아니라 폭격과 동시에 진격해 단 기간 내 이라크 영토의 75%와 유전 일대를 점령, 후세인을 바그다드 일대에 고립시킨 후 승기를 잡는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생방 무기를 쓸 여유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테러 지원세력을 제거하고 아랍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겠다는 것이 미국이 내건 이번 전쟁의 명분이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월남전은 보여줬다. 이번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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