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의 충격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수많은 목숨이 불과 10여분 만에 절규 속에서 사라져간 이번 사건은 한국사회의 병리 현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대형 사고 때마다 되풀이되는 안전 불감증이란 말도 이제는 듣기에 지겹다. 한 해 이용자가 24억 명에 달한다는 지하철이 방재의 사각지대였다는 말도 여기서 다시 하고 싶지 않다.
기관사를 비롯한 역무원들의 판단 착오가 더 큰 희생을 불렀다지만 이들이 죽을 죄인은 아니다. 내가 여기서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지하철에 불을 지른 방화범에 대해서이다.
범인 김대한(57)씨는 2년 전 중풍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택시기사로 일했으며 그 이전에는 화물 운전사, 행상 등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중풍에 걸린 직후 다시 실어증, 우측 반신 마비, 뇌경색 등 각종 질환에 걸려 2급 장애인으로 동사무소에 등록됐다. 그는 평소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으며, 한 번은 경찰에게 당신들은 총이 있으니 나를 죽여달라고 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김씨의 전력을 보면 그는 한 마디로 어렵게 살아온 서민이었다. 그의 방화 행위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생활고에 신병을 비관했을 그의 심정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나는 어쩌면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가난이나 지병 그 자체보다도 한국사회가 주는 상대적 박탈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눈만 뜨면 사방에서 손짓하는 소비에의 유혹, 세계적인 불황을 비웃듯 없어서 못판다는 수입 명품들, 내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공항, 최고급 외제 자동차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TV 연속극에 이르기까지 남들은 저렇게 잘 사는데 라는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사회에 대한 원망과 증오를 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했을 만큼 엄청나고 참혹한 것이 되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안전의식이 높아지고 방재시설이 확충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극도의 경쟁 위주로 적자만이 생존할 수 있었던 한국사회가 그 방향을 전환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제 2, 제 3의 김대한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방재시설의 확충으로 방지될 일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는 여성이 취업을 위해 성형 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가. 내가 미국이 살 만한 나라라고 느꼈던 순간 중 하나는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얼굴에 화상 흉터가 남아있는 여성 판매원을 보았을 때이다. 젊지도, 예쁘지도 않은 여성이, 더구나 얼굴에 흉터까지 지니고서 화장품 판매원으로 일을 하는 모습은 내게 거의 감동의 수준으로 다가 왔었다.
외환 보유고가 세계 4위를 자랑하는 한국은 이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는 상생의 사회로 방향을 전환할 때가 되었다. 서민들의 대통령임을 자처하는 새로운 대통령이 25일 취임했다. 그가 이제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초고속 성장의 시대를 마감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불어 사는 새 시대의 막을 열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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