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랑이나 사자가 맹수라 하지만 하루에 백마리의 사슴을 물어 죽일 수 있을까. 아무리 굶주려도 서너 마리만 먹어치우면 그 후에는 자기 앞에 사슴이 서있어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한꺼번에 백명씩 죽일 수 있는 잔인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도 만족하지 않아 계속 상대방을 공격한다. 인간의 잔인성과 파괴성을극대화하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 사회에는 객관적 판단력이 마비된다. 우리편이냐 적이냐의 이분법만 적용되고 인간성, 양심 운운 같은 것은 우습게 되어버린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했을 때 미국이 느낀 분노와 모욕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즉각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의회가 이를 인준하는 투표에 들어갔다.
상원은 82대0 만장일치로 선전포고를 찬성했다. 하원도 만장일치로 가결될 줄 알았으나 388대1로 반대표가 한표 나왔다. 몬태나주의 여성 의원인 자넷 랜킨이 종교적인 양심에 의해 전쟁을 찬성할 수 없다는 의사표시로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이 뉴스를 라디오로 전해들은 시민들은 의사당 앞에 몰려가 랜킨 의원을 규탄했으며 랜킨은 그 후 정치생명이 끝났다.
전쟁 상황에서 객관적 가치기준을 논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해 수십만명이 희생되었을 때 “이래서는 안 된다”고 외친 목소리가 없었다. 심지어 교계조차도 원폭 투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전쟁을 빨리 끝내지 않으면 미군이 5만명 더 희생되어야 한다는데 누가 이의를 말할 것인가.
지금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의 예상과는 달리 전쟁의 그림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수한 화력으로 이라크군을 제압하고 질풍 같이 바그다드로 쳐들어가면 거리에 이라크 국민들이 나와 진주 미군을 환영하고 이라크 군인들이 수천명씩 투항하는 것이 미국이 상상한 그림이었다. 특히 군 내부에서 동요가 일어나 투항 협상이 있을 줄 알았는데 사태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미군 탱크에 손을 흔들며 환영하는 시민도 없고 이라크군의 저항은 예상외로 완강하다. 도망병커녕 아랍 각국에서 이라크를 돕겠다는 민간 의용군이 바그다드로 몰려오고 미국과 맞서 싸우는 후세인에 중동 국가들이 격려 박수를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미군에 대한 이라크 국민의 냉담과 후세인의 영웅화 ―그것은 미국이 이번 전쟁에서 가장 우려하던 상황이다. 걸프전과 이라크전에서의 전쟁 코드가 다르다는 것을 미국이 읽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걸프전에서는 이라크군이 빨리 항복하고 쿠웨이트에서 집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으나 이라크전에서는 외국의 침공에 맞서 자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자존심 때문에 저항이 완강한 것 같다.
이제 부시 대통령은 바그다드 시가전을 치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만약 시가전을 치른다면 미군도 엄청난 시상자를 낼 각오를 해야 한다. 또 현재의 병력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어 1개 보병사단을 더 파병해야 할지도 모른다.
시가전을 치른다면 민간인 희생자가 늘어나 이번 전쟁에서 이겨도 중동에서 미국 증오의 바람이 불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전혀 바라지 않는 방향이다. 또 바그다드를 포위만 하고 시간을 끌면 후세인의 입지만 더 강화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단기전이 되느냐 장기전이 되느냐는 결국 바그다드 시가전에서 피바다를 각오하느냐 아니면 피해 가느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미국은 그동안 인공위성을 통해 이라크군의 움직임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으나 인공위성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미국은 이라크 국민의 민심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번 전쟁에서 결국 미국이 승리하기는 하겠지만 그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다.
이철 주필
chullee@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