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엔 유난히 고향생각이 난다. 늦봄까지 때도 없이 부슬부슬 뿌려대는 봄비 탓일까. 초원은 유난히 더 푸르고 봄비 머금은 나뭇잎들의 살랑거림은 나의 마음을 자꾸만 저 먼 어린 시절의 시골길로 실어만 간다. 오늘같이 비오던 날 안개 걷히는 먼 산의 푸른빛은 참 아름답기도 했지...
일주일 여행을 다녀오니 어느새 정원에는 연보라색 베일같이 곱디고운 난초 한 무리가 활짝 피어있다. 흰색 분홍색 튤립도 만발이고 꽃구름같이 한 무리 피는 아기 넝쿨장미 씨슬 부루너도 한창이다. 삶은 아름답다! 우리네 사연이야 어이됐든 봄은 아름답다! 그런데도 마음 한켠으론 한 가닥 슬픈 상념을 달랠 수 없는 건...
어머니날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한동안 예정했던 대로 늙으신 어머니를 뵈러 서울 방문을 못하게 된 탓이리라. 그리던 손녀를 보실 생각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던 우리 어머니는 이 어수선한 시국에 행여 금쪽같은 딸과 손녀가 화를 입으랴 그 간절한 소원을 저버리셨다. 슬픈 마음은 그래도 철이 없다.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자식을 섬기는 분이셨다. 지난가을 어느 날 우편으로 받은 소포 한 뭉치가 생각난다. 어느 날 포장테이프를 잔뜩 둘러 댄 이상한 소포를 받았는데 도대체 누가 이렇게 이상한 걸 보냈을까 하고 살펴보니 어머니가 보내신 것이었다. 책들이 한 아름 나왔다. 목민심서, 김소월 시집, 춘원 이광수의 흙 등등... 동봉한 어머니의 편지 사연인즉 내가 이 칼럼을 쓰는데 혹시 도움이 될까해서 보내셨단다.
직업상 영어를 주로 쓰니 혹시나 유식한 한국말 표현이 서투르지 않을까, 글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영어표기에 자신이 없으셔인지 내가 전에 보낸 편지의 발신인란을 오려 소포에 붙이셨다. 우리 엄마... 지금도 그 애틋한 정성을 생각하면 눈물이 한없이 쏟아진다...
그래도 이 이야기는 단순히 모녀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위하고 애틋이 애정으로 감싸주고 조용히 뒤에서 밀어 준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삶에 성공할 수 있게 하는 지상의 보장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자식을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효도하고 순종하라고 배워왔다. 그런데 부모로서의 자식에 대한 도리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 본 것이 없다. 오늘날 한인사회의 청소년들이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고립되어 방황하거나 종종 삐뚤어진 길로 빠져들고 있는 현실에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봄이 어떨까. 자식의 소행이 간혹 어긋나면 우리 한국인 부모들은 실망감을 참지못하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면서 자식을 고래고래 고함과 질책으로 때려잡기 일수이다. 내가 소홀했을까, 무엇을 잘못했을까하고 먼저 자신을 반성하며 우리 함께 열심히 잘해보자고 서로를 용서하고 다독거리는 이들은 드문 것 같다.
동(東)으로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서(西)로는 "사과는 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부모의 존재와 역할이 자식들의 성장과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두말 할 것 없이 상기시켜 준다. 부모도 얼마나 배우고 덕을 쌓아야 하는가를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 된 우리들은 자식들에게 과연 맑은 물을 내려주는가. 자식의 장래를 우리의 욕심의 틀 속에 가두어서 키우지는 않는가. "자식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라는 게 우리 자신의 소위 말하는 행복의 관념이 아닌가. 우리는 그들의 꿈과 타고난 재능을 고이고이 키워주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주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나는 가끔 한인사회에 한인이세 법률가, 의사 등은 이리도 많은데 해양생물학자나 건축가, 천문학자, 언론인은 왜 이리도 귀한가하고 자문해본다. 혹시 천편일률적인 소위 한인들의 가치관 때문이 아닐지?
무엇보다 더 소중한 것은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신뢰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나 사회에 나가서 아무리 조그만 일을 하더라도 자신에 대한 확신과 만족감을 느끼며 사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적표로 안 된다. 재산도 아니다. 오직 조건없는 사랑과 정성과 섬김뿐이다.
어머니날에, 가족의 달에, 부모들이여 별다른 운동을 한번 해 봅시다. 자식들을 섬겨봅시다. 그들을 안아주고 사랑해! 너희들이 정말 자랑스럽구나! 네가 최고야! 하며 등을 토닥거려 줍시다. 그 결과를 당신들에게 선물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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