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의 글에서 글쓰기가 어렵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어려운 것은 글 속에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고, 부끄러운 것은 그렇게 문·사·철을 겸비하지도 못한 글을 남들에게 내놓는다는 것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은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글로써 시류(時流)에 칭찬 받기를 좋아하고, 경전의 글귀를 표절하여 문장을 꾸미는 것(好以文辭 取譽於時 剽竊經傳 以飾浮藻)"은 공부에 뜻을 둔 사람이 학문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는 좋지 못한 습관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율곡 선생은 이러한 버릇을 과감하게 끊어버리지 않으면 끝끝내 학업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바로 율곡 선생이 말하는 그러한 좋지 못한 습관이 아닐까 생각하니 가슴이 뜨끔하다. 만에 하나 내 글이 활자화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알량한 명예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것은 공부에 방해가 되는 일일뿐이리라. 그래서 이번에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선생의 다음과 같은 경구를 몇 번이고 되새겨 본다.
"지금 글쓰기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명제가 있으니, 그것은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속이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해야한다는 것이다(今留心文章者 有第一義諦 當先自無自欺始也)."
또한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다음 구절도 글을 쓰기 전에 되새기고 음미하는 경구이다.
"공적을 뽐내고 자기가 지은 문장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다 외부 사물에 의해 훌륭해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음의 본체가 찬란하게 빛나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면 비록 한 치의 공적도 없고 한 글자의 학문도 없을지라도 저절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誇逞功業 炫燿文章 皆是 外物做人 不知 心體瑩然 本來不失 卽無寸功隻字 亦自有堂堂正正做人處)."
나 자신을 알고, 나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서 글쓰기를 시작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음의 본체가 빛나는 모습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마음에 빛나는 모습이 없으면서도 글을 써서 남들에게 내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게 글쓰기가 어렵고 부끄러운 일이라면 무엇 때문에 지금 글을 쓰고 있는가?
공자는 『논어(論語)』첫 편인 「학이(學而)」편 첫 구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배워서 때에 맞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글을 쓰는 일이 때로는 귀찮고 어려우며, 부끄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고전 산책이라는 표제로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은 내게 고전의 숲을 산책하는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고전을 통해 옛 성현들을 만나고, 그들의 가르침을 익혀나가는 일은 세상 사람들이 즐겨하는 여러 가지 오락이나 놀이보다 내밀한 즐거움을 준다. 돈벌고, 주색잡기를 하고, 오락과 여흥을 즐기는 일만이 즐거운 것이 아니다. 아니 그런 즐거움은 곧바로 허전함과 피로를 가져오고, 지나치면 도리어 고통을 가져다준다. 고전의 숲을 산책하는 일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일일 것 같지만, 익을수록 맛이 나는 된장과 포도주 맛처럼, 산책길에 자주 그리고 숲 속 깊이 들어갈수록 은은하고 지속적인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이 때문에 자주 고전의 숲 속으로 산책을 떠나는 것이다.
게다가 숲 속 산책길에서 뜻밖에 보고싶던 옛 친구를 만난다면, 우연히 한 눈에 반해 마음이 통하는 멋진 연인을 만난다면? "서로 얼굴 아는 사람이야 천하에 가득하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되겠는고?(相識 滿天下 知心 能幾人 -『명심보감(明心寶鑑)』)." 고전의 숲 속에서 서로 뜻이 통하는 벗을 만나는 즐거움을 어디에 비할 수 있으랴. 그런 기대감으로 글을 쓰니, 어렵고 부끄러우면서도 글쓰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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