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 식욕을 잃게 만든다. 무얼 먹고 싶은 마음이 없다.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다. 한인 이민의 역사가 본격 시작된 1960~70년대 한인들은 맨하탄 한인타운에 가서 곰탕을 먹고 비빔밥을 먹으면서 향수를 달랬다.
생업에 바쁘다보니 샌드위치나 햄버거로 한 끼를 때웠고 쉬는 날이면 맨하탄에 나가서 뜨끈뜨끈한 곰국 한사발을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해지면서 그리움에 허기진 마음이 달래졌던 것이다.
1960년대에 맨하탄에 한국음식점 ‘미신’과 ’아리랑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이어 우리하우스, 삼복식당, 인천집, 우래옥, 뉴욕곰탕하우스, 강서회관 등이 개업했다. 현재는 뉴욕과 뉴저지 지역에서 수백 개의 한식당이 영업 중이다.
한식 개척자 선배의 뒤를 이어 전문 요리학교를 졸업한 젊은세대들이 맨하탄 곳곳에 파인다이닝(고급식당)을 열어 성업 중인데 고객 80%가 현지 타인종이다. 한식당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2024년 12월에는 레스토랑 평가의 바이블인 <미슐랭가이드>에 미국내 한식당 처음으로 최고 등급인 3스타에 ‘정식당’(셰프 임정식)이 입성했다. 2024년 뉴욕타임스 선정 ’뉴욕최고의 레스토랑 100곳‘에 아토믹스, 옥동식, 윤해운대 갈비, 마포갈비 등 한식당 7곳이 선정됐다.
이들 식당은 한국 재료와 맛, 한국 정서를 기본으로 정교한 코스 구성에 멋진 플레이팅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뉴욕에서만 미슐랭 스타를 받은 한식당이 8곳(정식, 아토믹스, 꼬치, 꽃 등), 미슐랭 2스타 이상이면 저녁코스가 1인 300달러라 하면 세금과 팁까지 부과되면 2인 1,000달러에 육박한다. 뉴욕레스토랑 위크가 아니면 좀체 갈 수가 없다. 물론 예약도 어렵다. 뉴욕타임스 선정 7곳 중 퀸즈 지역 유일의 마포갈비는 직장 근처라 점심시간에 자주 갔던 곳으로 가격은 일반식당 수준이다.
우리가 보통 가는 한식당은 식당과 메뉴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지는데 일반식당 1인 20~30달러(텍스와 팁 포함)이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한국 식자재 값이 올라 음식값이 오른 데다가 팁도 부쩍 올라 20~30%를 주어야 하니 온 식구가 한번 외식하기가 쉽지 않다.
작년과 올봄까지 장기간 서울에 있으면서 식당 밥값이 너무 싸서 놀랐다. 특히 팁 계산을 하지 않으니 좋았다. 어떻게 그렇게 점심을 싸게 먹을 수가 있는지, 부러웠다. 장터순대국 8천원, 묵은지갈비찜 1만원, 빼해장국 9천원, 갈비탕 9천원, 미역국과 추어탕, 보리굴비도 1만5천~2만원이다.
이때 자주 먹었던 음식은 잔치국수다. 한겨울철에 뜨뜻한 국물 한모금이면 더이상 바랄 게 없이 만족해지는 것이 바로 잔치국수. 분당에서 지낼 때는 야탑역 인근의 모든 잔치국수집을 섭렵했다. 가격은 6천원. 그런데 이 가격보다 싸고 맛있는 곳이 있었다. 바로 남대문 시장의 잔치국수, 그리고 여의도의 한 백화점 지하의 김치국수이다.
남대문 시장의 얼큰하고도 시원한 멸치 국물맛은 최고다. 샤핑하느라, 일하느라, 끼니때를 놓친 사람들은 저마다 3천원을 내고 선 채로 국수를 먹었다. 고명이라고 해야 김치 잘게 썬 것, 계란 지단 조금, 파 정도인데 다들 만족한 얼굴이었다.
목동의 김치국수는 더 쌌다. 2천원으로 미국돈 1달러50센트이다. 카운트에는 “국수는 현금으로 내주시기 바랍니다.“ 써있다. 이 정도는 애교다. 가난하고 배고픈 자에게 베푸는 국수, 외롭고 지친 자들이 잠시나마 먹는 행복을 맛볼 수 있다. 오늘 점심에 뭘 먹지 고민하다가 이 시를 만났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은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싶다
(중략)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싶다’
(이상국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
낯선 사람끼리 좁은 공간에 나란히 앉아 고개 숙여 국수를 먹는다. 늙은 사람의 가는 뒷목을 보면서, 삶의 허전함을 공감하며 먹는 국수 한가닥, 나는 국수가 먹고 싶다.
<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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