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We Need New Names)》는 노바이올렛 블라와요가 짐바브웨와 미국을 배경으로 이주자의 삶과 정체성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는 짐바브웨의 촐로초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에 미국 미시간주로 이주했다. 이후 코넬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하며 작가로서의 길을 닦았다.
이 소설은 짐바브웨 소녀 ‘달링’이 고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녀는 비교적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정치적 혼란이 삶을 급격히 뒤흔든다. 할아버지는 테러리스트를 숨겨줬다는 이유로 살해당하고, 이웃들과 가족들은 폭도들에게 쫓겨 삶의 터전을 잃는다. 달링은 불도저가 집을 밀어버리는 악몽에 시달린다.
‘파라다이스’라는 이름과는 달리, 그곳은 빈민가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 황량한 땅에 작은 집을 짓고 살지만, 삶은 배고픔과 허무함뿐이다. 아이들은 아무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부자들이 사는 ‘부다페스트’에 몰래 들어가 구아바를 훔쳐 먹으며 논다. 그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NGO가 사진을 찍은 뒤 나눠주는 물품들뿐이다. 아이들은 ‘나라놀이’를 하며 세상을 ‘제대로 된 나라’, ‘그럭저럭 살 만한 나라’, ‘거지같은 나라’로 나눈다.
태어난 나라지만, 삶이 더는 그렇게 계속될 수 없음을 깨달은 아이들은 마침내 그 땅을 떠난다.
달링은 미국 디트로이트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또 다른 삶이 시작된다. 어디든 산다는 건 그리 녹록치 않다. 눈 덮인 도시와 차갑고 황량한 거리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짙게 만든다. 그리고 아무리 풍족한 음식을 먹어도, 허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고통을 삼키고, 두려움을 견디며 그들은 일하고 또 일한다. 아프리카는 거대한 대륙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콩고, 르완다, 짐바브웨 같은 서로 다른 나라들을 하나로 묶어 단순화해 버린다. 각기 다른 정체성은 인정받지 못한 채 ‘아프리카인’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통합된다. 그런 순간에는 그저 웃어넘기지만, 아프리카의 고통이 사람들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농담처럼 쏟아질 때면 눈물을 참지 못한다. 이민자들이 겪는 경험과 감정이 이 장면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달링은 결국 미국에서도 주로 아프리카 출신 친구들과 어울린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한다. 고향에서는 너무 배가 고팠기에 절박한 순간에 하느님을 버렸다. 절망 속에서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넘치는 음식을 마주했을 때 문득, 어쩌면 하느님은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처음 본 미국은 놀라웠다. 부모는 자식을 체벌할 수 없고, 늙은 부모는 양로원에 맡겨진다. ‘무슨 나라가 이래’라는 말은 함부로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런 말은 우리끼리 있을 때만, 진짜 우리 목소리로만 해야 했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숨이 막힐 듯 밀려올 즈음, 달링은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냉소적인 친구는 말한다. “여기가 네 조국이라면, 떠나지 말고 여기 남아서 사랑했어야지.” 무언가를 얻으면 반드시 무언가는 잃게 된다.
이민자가 영어로 인해 겪는 고통은 생생하다.
‘우리는 영어로 말할 때, 머릿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고, 단어를 배열하고, 혼잣말로 연습하고, 말이 제대로 나왔는지 확인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무렵이면,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이 걷는 것처럼 휘청거리는 말이 되어버린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영어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도무지 들을 줄 모른다’는 대목에서는 쓴웃음을 짓게 된다.
작가는 줄곧 ‘우리’의 입장에서 말한다.
‘시간은 어느새 지나가 있었고, 우리는, 그 흐름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태어났지만, 그들에게는 우리의 이름을 물려주지 않았다. 대신 미국식 이름을 주었다. 고향의 풍습을 지키지 않았고, 돌아가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아이들을 키운 방식은, 부모가 우리를 키운 그것과 달랐다. 그들은 우리말을 하지 못했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랐다. 그런 모습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우리는 결국 받아들였다. 나이가 들자 우리는 낯선 이들의 손에 맡겨져 양로원에 보내졌다.’라고 말을 맺는다.
그가 말하는 그 ‘우리’는 바로 나였고, 또 다른 수많은 ‘우리’들이었다
<
한 영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