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기시 노부아키의 일본만화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각색한 이상한 스토리의 영화 ‘올드보이(감독 박찬욱)’.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와 더불어 세계 3대 영화제라고 일컬어지는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 세계가 그 작품성을 인정한 영화. 미스터리의 결말이라 할 수 있는 범인의 정체를 영화 초반부터 까발리고 시작하는 기묘한 줄거리의 ‘올드보이’는 ‘누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가 중요하다. 무슨 이유 때문에 오대수(최민식)는 15년 동안 감금당했을까.
영화는 싸움을 벌여 경찰서에서 붙잡혀와 조사를 받고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술에 취해 안하무인격인데다 말많고 횡설수설하고 짜증나는 행동의 소유자 오대수, 보는 이로 하여금 거부반응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요소를 가진 인물이다.
자신의 이름 석자 오대수를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라고 풀이하는 전형적인 서울의 소시민. 이런 그가 술에 깨어보니 사설 감방에 갇혀있다. 누가 나를, 왜 나를, 얼마 동안 나를 이라는 3가지 물음을 가지고 서서히 수면 위로 부상한다. 일반적인 미스터리물의 공식은 왜에서 비롯된다. 왜를 풀고 나면 한 명씩 한 명씩 주위인물을 파헤치며 엑스마크를(x) 표시해 나간다. 그런 다음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해답이 관객에게로 던져진다. 그러나 ‘올드보이’는 역학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관객은 범인을 찾는데 두뇌와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 없이 이우진(유지태)이 그를 15년 동안 감금한 인물임을 안다.
범인이 영화시작한지 몇 십분 지나 재발로 나타난다. 어, 이거 너무 일찍 김 빠지는 거 아닌가. 그렇다. ‘올드보이’는 어차피 인물보다는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왜라는 큰 물음표를 신호음으로 관객은 우진은 대수에게 무슨 한 맺힌 원한이 있었기에 15년이라는 세월을 가두었나로 궁금증이 급선회한다.
영화에는 박찬욱 감독의 위트가 곳곳에 깔려있다. 갇혀있으면서 군만두만 15년 동안 먹는 설정, 탈출을 위해 감금 방 한쪽 구석을 쇠 젓가락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파헤쳐, 마침내 탈출구를 마련한 날 어이없게 납치됐던 장소에 풀려나 있는 등 그만의 독특한 만화적 유머가 깔려있다.
금기라 할 수 있는 부녀간, 남매 간의 근친상간이라는 소재가 다소 엽기적이긴 하지만 영화의 기이한 흐름에 비추어 볼 때 메가톤급 충격은 아니다.
올드 보이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영화의 톤이다. 블루톤을 사용, 영화 전체가 차가운 느낌, 세상과 차단된 이중적 분위기를 준다는 점이다.
최민식의 애인으로 나오는 미도역의 강혜정은 이미 2001년 디지털 영화 ‘나비’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바 있는 배우로 오버하지않는 틀에 맞는 연기를 펼친다.
’올드보이’의 최민식의 연기는 최고점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보는 이가 그와 함께 분노하도록 만드는 ‘카리스마’와 관객을 끌고 나가는 힘을 지녔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도가 사랑해요 아저씨라고 말하자 한 얼굴에 붙어있는 입과 눈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따로따로 일그러지는 모습, 금방이라도 ‘윽’소리가 터져 나올 듯 절제된 감정표현에 탄성이 일었다.
물음표(?)로 시작돼 (…)라는 방식을 지나 (!)로 끝맺는 영화, 다소 불편한 영화, 상상하기 싫은 반전, 그러나 틀이 없는 영화이기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그것이 ‘올드보이’의 핵이다.
<김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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