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렇게 살아 봅시다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편안히 살던 요셉과 마리아는 갑자기 원치 않는 길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황제 아구스도가 호적을 등록하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약혼자 사이였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조상인 다윗의 고향 유다 땅 베들레헴까지 가야 했습니다. 만삭의 몸이었던 마
리아는 짜증이 났습니다. 하필이면 왜 이때입니까? 몸이나 풀고 나서 가면 안 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황제 아구스도의 호적 명령을 통해 뜻을 이루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태어나리라는 예언은 아구스도의 호적 명령이 아니면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갈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편하고 짜증나거나 내 힘으로 감당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 성경적 역사관과 우주관을 가지고 소망을 품어 봅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이해하지 못할 일이 일어나도
예수님의 부모님처럼 살아봅시다. 이라크의 전쟁이나 카트리나 태풍은 견디기 힘든 것들이지만 이런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역사 속에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A. T 피어슨이 말한 것처럼 “역사는 하나님의 스토리”(History is His Story)이기 때문입니다.가필드 대통령도 “역사는 예언의 두루마리가 풀어진 것이다”(History is the unrolled scroll
of prophecy)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손해 보거나 원치 않는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쓰시는 역사는 나를 통하여 오늘도 계속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지만 높은 보좌 위로 임하신 것이 아니라 가장 천한 사람들이 몸을 의지하는 장소였던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필이면 왜 그런 곳입니까? 이번 연말에 우리도 그렇게 살아봅시다. 너무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그저 낮은 곳으로 내려가 봅시다. 하버드대 신학 교수 출신인 헨리 나우웬은 ‘내려가는 길’(downward mobility)에 예수님은 항상 계시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사람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양치는 목동과 한 달 동안 낙타를 타고 온 동방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가장 귀중한 것을 드리면서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큰 소리 치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예수님을 경배치 않았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을 것이니라.”(마16:24). 그렇게 살아봅시다. 오늘도 에셀 나무를 심으며…
글 : 호성기 필라 안디옥 교회 담임 목사
삽화 : 오지연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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