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
[CF나라] 비교광고 테크닉의 진화
광고계의 ‘딴죽 걸기’ 전법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동통신사 LG텔레콤이 ‘어제의 SK텔레콤 모델’ 한석규를 품은 신규 캠페인을 내놓으면서 ‘비교광고의 테크닉이 어디까지 왔는가’에 대해 관심을 높이고 있다.
경쟁회사 전임모델 전격 기용
이동통신 새로운 길 은유 표현
경쟁브랜드인 코카콜라를 노골적으로 거론해 패대기 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펩시 광고는 오랫동안 질리도록 회자돼온 비교광고의 대명사. 지난 2001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비교광고의 표현방식과 관련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국내 광고계에도 경쟁브랜드를 직간접적으로 인용하는 비교광고가 심심치않게 고개를 내밀어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LG텔레콤 CF는 외국에 비해 역사가 짧음에도 한국식 비교광고의 기술이 한결 과감해지고 정교해졌음을 엿보이며 향후 행보에 기대감을 낳고 있다.
‘제1화 만남’편으로 제목을 달아 시리즈로 이야기가 이어질 것임을 암시한 이 CF는 기차에 오르려다 다른 선로의 기차를 바라보며 머뭇거리는 한석규의 모습으로 돛을 올린다. ‘늘 같은 길을 가다가 오늘 문득 새로운 길이 궁금해진’ 한석규는 타려던 기차에서 내려 다른 기차를 향해 달려간다. 용기를 내 올라 탄 그 기차안에서 그는 자신을 ‘형’이라 부르는 지인 김주혁과 반갑게 해후해 동행을 시작한다.
한석규는 모델 시효가 끝난 지 3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믿음직스럽고 다감한 내레이션과 미소로 SK텔레콤의 각종 히트캠페인을 이끌었던 주역이라는 인상이 깊은 모델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오랜만에 이동통신사 모델로 컴백하면서 다른 브랜드를 택했다. 일단 계약에 따라 움직이는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 이 대목을 왈가왈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한석규가 SK텔레콤 CF 시절의 이미지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LG텔레콤 CF로 ‘이적’했으며 더군다나 그같은 실제상황을 광고에서도 기차를 갈아타는 ‘상징과 은유’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의리’의 정서가 강한 우리네 특성을 고려하면 논란의 소지가 있다. 실제로 이 CF가 방송을 탄 뒤 광고 관련 사이트에는 ‘상도의에 어긋난 것이 아니냐’며 반감을 표시하는 댓글도 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 광고가 경쟁사, 그것도 업계 1위 브랜드의 전임 모델을 과감하게 ‘모셔와’ 논란과 자극을 유도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영화계 선후배인 한석규와 김주혁은 늘 가던 길을 가는 데 익숙해진 세대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세대를 각각 대표한다.
다시말해 한석규가 다른 이동통신을 이용하는 데 익숙해져있는 비 LG텔레콤 사용자라면 김주혁은 LG텔레콤의 분신인 것이다. 이 광고는 첫 탄에서 이동통신과 관련한 현실의 은유인 이들의 동행을 보여주며 LG텔레콤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를 찬찬히 설명해나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것도 결국은 자기 자랑이지만 고도의 상징성과 설득력을 겸비해 부드러운 화법을 구사한 이번 CF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고양하겠다는 광고적인 노림수를 제대로 발현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사하고 유치한 ‘밭다리 걸기’ 따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 광고를 담당하고 있는 금강오길비의 김해욱 차장은 “한석규를 모델로 기용한 것은 빅모델 전략의 새로운 방식을 고안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경쟁사를 걸고 넘어지겠다는 단순한 비교광고로 이번 캠페인을 시작하지 않았다. 앞으로 우리 주변의 숱한 고정관념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자는 의도로 메시지를 하나씩 던져나갈 참이다”고 말했다.
매우 공격적이되 유머로 두루뭉실하게 거부감을 뒤덮는 외국의 비교광고와는 또 다르게 정중동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이 광고의 유려하면서도 강렬한 속삭임에 늘 가던 길을 가는 데 안주한 나머지 새로운 길에 대해서는 차마 엄두내지 못해온 사람으로서 귀가 솔깃해진다.
조재원 기자 mii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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