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상·교훈 전해줄 관련기관 한 곳 없어
한·흑 교류 등 치유 노력도 한때 반짝
인종갈등 양상 더 심화“제2의 폭동 우려”
해마다 이 맘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4.29. 한인사회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겼지만, 반면 가장 큰 변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날의 교훈은 세월과 함께 과거 속으로 묻혀가고 있다.
폭동이 발생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한인사회에는 아직도 제대로 된 관련 기관이 없다. 타민족과 후손들에게 그 날의 참상과 교훈을 전해주고 싶어도 갈 곳이 없다. 한미연합회 4.29센터에서 폭동유물을 모으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고, 한미박물관은 이따금 4.29관련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폭동직후 한인들이 정성을 모아 제작한 고 이재성군 흉상조차 갈 곳을 못 찾아 10년 넘게 전 청년단 단장 사무실에 보관돼 있는 게 한인사회의 현실이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과 2차대전 당시 캠프에 강제수용 됐던 일본계 미국인이 역사를 바로 세우고 후손에게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펼치는 노력과는 대조를 이룬다.
어린 시절 폭동을 목격한 1.5세와 2세들이 어느덧 사회인이 돼 그들 중 일부가 4.29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4.29를 잊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과 계층간 갈등 심화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많은 한인들은 폭동 이후 한·흑 관계가 좋아졌다는 막연한 긍정론에 기대고 있지만, 현실은 그런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관련 한인들의 일반적 평가다.
흑인 상공인들의 모임인 크랜셔 상공회의소 김태현 부회장은 “폭동 직후 반짝 교류가 있었지만, 지속적 관계를 유지한 단체는 거의 없다”며 “여전히 한인상인들에 대해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라티노, 흑·라티노, 흑·백 등 인종갈등의 양상이 훨씬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계층간 갈등이 심화됐다는 것도 큰 문제다. 인권운동가 앤젤라 오 변호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내부적으로 4.29 행사를 진행해 왔던 한인사회가 올 해 들어 흑인사회 등 타커뮤니티와의 교류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은 고무적이다. 모처럼 마련된 타 커뮤니티와의 관계개선 기회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올해에도 많은 행사가 열리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1990년대에 미국에 건너온 신규 이민자와 폭동 이후 태어난 다음 세대의 대부분은 4.29가 어떤 의미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남가주 한국학원 이종석 이사장은 “부모들이 4.29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자녀들은 당연히 모르는 것”이라며 “다음 학기부터 윌셔 초등학교와 주말한국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의 평화시위
한인 이민 역사 최악의 재난, 그리고 치욕의 역사로 가슴깊이 새겨졌던 4.29 폭동의 상흔을 잊지 말자고 약속하고 또 약속했건만 14년이 지난 지금, 점차 지워져 가는 우리의 기억으로만 남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당시 평화 시위 장면. <본보 자료사진>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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