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을 선택하는 기준 중에는 두 가지가 있다. 미치도록 재미있거나 작품성 있는 좋은 영화. 아무 생각 없이 낄낄대며 볼 수 있는 시간 죽이기용 영화가 있다면. 감독의 분명한 의식, 배우의 살 떨리는 연기가 있는 영화도 있다.
영화 ‘다세포 소녀’는 재미있는 영화의 얼굴과 의식 있는 영화가 되고픈 마음 사이에서 연신 갈팡질팡 한다. 우리 사회의 성 풍속도를 꼬집는 인터넷 동명 만화’다세포 소녀’(채정택 원작,필명 B급 달궁)를 원작으로 정사(2000), 스캔들(2003)로 색감있는 멜러를 선보여온 이재용 감독이 만들었다.
인터넷 만화에서 가져온 돌발적인 금기 무시의 재미가 영화로 옮겨져서는 새로 덧칠된다. 저주받은 걸작’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감독의 말대로 만화의 B급 유머는 A급 제작 시스템을 거쳐 다듬어진다. 19禁 만화가 15세 관람가 영화로 각색된 것이다. 결과는 머리 깎인 날라리 같은 정체성 혼란이다.
쾌락이 교풍인 무쓸모 고등학교. 문란한 원조교제로 성병에 걸린 선생님 때문에 제자들은 자기도 감염됐을까 걱정이다. 또 다른 선생님은 못난 스승을 치라며 굳이 바지를 벗어 여학생이 때리는 매를 즐긴다(?). 이렇듯 파격적인 대사와 캐릭터는 귀여운 교복과 유쾌 발랄한 교실 분위기와 겹쳐 위험수위를 낮춘다.
뮤지컬 장면에서 배우의 노래와 동시에 등장하는 노래방 자막이나 단지 피라미드 모형을 파는 다단계 회사, 다급한 상황에도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학생들, 스포츠 신문의 익숙한 헤드라인까지. 일상의 통속적인 단면은 마구 포개져 웃음을 불러오는 첫번째 힘이 된다.
김옥빈, 박진우, 이켠 등 신예 청춘스타를 앞세웠지만 영화 속에는 도발스러운 것은 중년 연기자다. 일인(人) 다역(多役)을 연기한 변태 취향 교사 이재용, 크로스 섹슈얼로 분한 이원종,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의 엄마로 등장하는 임예진은 눈 하나 깜짝 않는 태연한 연기로 영화의 두 번째 웃음의 위력을 보여준다.
각각의 에피소드의 재기가 부분적으로 빛나긴 하지만 원작 만화의 파격이 주는 카타르시스 만큼은 아니다. 대중성과 시사성을 더하기 위해 ‘모범생 길들이기’를 거부한다는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 덕분에 코믹 성애담과 고교 학원물 사이에서 영화의 정체성은 어정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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