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 때 아닌 골드러시
주식시장 폭락세에 금값 급등하자
옛 ‘49ers’ 동네에 사람들 몰려들어
마더 로우드 타운 뒤로 솟은 가파른 시에라 산록 높은 곳, 포장도로도 끊긴 그곳으로 소나무와 시더 나무로 뒤덮인 협곡이 펼쳐진다. 그곳은 월스트릿을 뒤흔들고 있는 금융재앙과 으로부터 아주 거리가 먼 곳이다. 페리 커팅햄은 거기서 캘리포니아 주의 초기 산업, 금 캐기를 하고 있었다.
며칠 전 커팅햄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긴박한 금융 속보를 접하면서 스크린 하단에 나타난 금 시세 목록을 쫓아갔다. 주식 값이 폭락한 것과 대조적으로 금값은 온스 당 1,000달러 선으로 치솟았다.
커팅햄은 1인 운영체제 금광에서 지난 30년간 풀타임으로 일 해왔다. 이 금광에 매달리면서 온갖 경제적 풍파를 견뎌온 것이다. 금값이 오르자 65세의 이 전직 카레이서는 그동안 모은 금 부스러기들을 거리의 금 상인들에게 가지고 갔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금을 모두 팔았다.” 최소한 온스 당 910달러에서 1,000달러 선에 모두 처분했다.” 커팅햄의 말이다. 얼마 어치나 될까. 이 광부는 웃기만 한다. 그리고 떠듬떠듬 대답한다. “충분한 정도다.” 커팅햄은 마침내 대답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또 이렇게 덧붙였다. “꽤 많은 액수다.”
최근들어 금값이 다시 오르기 시작한 것은 1년 전부터 경제가 흔들리면서다. 그 결과 금맥 찾기응 주말 취미로 삼은 사람들, 또 이 방면의 풋내기들이 이제는 골드러시의 전설이 된 이 캘리포니아 마더 로우드로 몰려들고 있다. 새크라멘토 외곽의 시에라 산록에서 남쪽으로 프레스노 위 코스골드로 이어지는 이 지역이 새삼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광풍이라고 할까, 그런 분위기가 휩쓸고 있다.” 호두 크기만 한 금괴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꿈과 함께 각종 광산장비를 가득 싣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과 관련해 제임스타운의 한 광산장비 판매업자가 한 말이다.
금이 없다는 게 아니다. 주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는 금은 캘리포니아에서 1,300만 달러어치 채굴됐다. 문제는 한 세기 전 골드러시 때같이 그렇게 쉽게 금을 캐낼 수 없다는 것이다.
커팅햄의 경우도 그렇다. 개울이나 강가에 널브러진 노다지를 캐는 게 아니다. 한 마디도 그의 땀의 결정체다. 그는 쉬지 않고 굴을 파나간다. 그러면 먼저 떨어지는 것은 수천 톤의 석영 덩어리들이다. 그걸 홈 메이드 분쇄기로 부수고 그라인더로 갈고 체를 치거 분리기에 넣는다. 바위 속에 박힌 얇은 금의 박편을 얻어내기 위해 수백 톤의 돌덩이들을 부수고 갈고 하는 일들을 하는 것이다. 운이 좋은 날은 이 같은 수고를 통해 건포도만한 금 부스러기를 채취하기도 한다.
이제 커팅햄은 거의 ‘도사 급’이 됐다. 한 눈에 온통 석영투성이인 돌덩어리에서 얼마만큼의 금이 나올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는 6피트 높이의 석영 덩어리를 가리키면서 이 안에서 아마도 7,500달러의 금을 채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러나 그가 겨우 내내 매달려야 해낼 수 있는 작업량이다.
“나에게 있어 이는 정규적인 일이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장비를 잔뜩 사들고 사람들이 찾아 든 것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80년대 금값이 올랐을 때도 그랬고, 요즘도 그렇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한다. 이 일을 감당해내지 못한다.”
커팅햄은 비싼 장비를 살 여유가 없다. 그가 가진 장비는 그래서 대부분이 ‘홈 메이드’다. 정크 야드를 뒤지고, 파손된 농장장비를 사들인다. 비행기 바퀴, 자동차 스프링, 도마도 경작기 등의 부품을 끌어 모아 광석을 부수고, 갈고, 분리하는 공장을 스스로 만들었다.
“우리는 거의 자급자족하고 있다.” 이웃 마크의 말이다. 은퇴 트럭운전사인 그는 근처의 광산권을 샀다. 그리고 커팅햄의 지도편달 하에 파트너가 돼 금을 캐고 있다. “아마도 이 근처에서 계속해 금 캐기에 매달여온 있는 사람은 우리 둘 밖에 없을 것이다.” 커팅햄의 말이다. 노다지의 꿈 실현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이야기다.
30여년 홀로 금 캐기 전념
폐광 사들여 노다지 찾기도
커팅햄은 이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사우스 다코타의 농장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에 밍크 사냥을 하며 지냈다. 공군에 입대해 거기서 기계에 대한 기술을 연마했다. 그리고 1970년대 캘리포니아로 와 카레이서 생활을 했다.
그런대로 카레이서로 성공을 했다. 전국적인 페어에도 몇 차례 출전을 했을 정도다. 그러나 제대로 된 스폰서는 없었다. 그러다가 그 생활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오렌지 카운티에 살 때 그는 금속 탐지기를 하나 장만했다. 그리고는 금을 찾기 위해 사막에 가서 며칠을 지내곤 했다.
1970년대 말 커팅햄은 이곳 마더 로우드로 찾아들었다. ‘잃어버린 보물’에 관한 책이 단서가 됐던 것. 그는 결국 이곳에 머물기로 결심을 했다.
이제는 폐광이 된 오랜 광산을 사들인 것이다. 그는 지질학에 대해 상당한 조예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오리건에서 금을 캐내 한 목 잡아 농장을 샀다. 엉클은 다코타의 한 큰 광산에서 십장으로 일을 했었다. 이런 가정적 배경 때문에 날 때부터 광부로 훈련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폐광인 ‘라이플 광산’이 포한된 8 에이커짜리 필지를 사 이곳에서 정착하게 됐다. 이 광산은 1853년 석영 광산으로 개발됐다. ‘포티 나이너스’(49ers)들이 강이나 개울에서 금을 주워 황재를 하던 골드러시도 시들해지면서 금 캐기가 점차 어려워진 무렵이다.
커팅햄은 이 오랜 광산을 파들어 갔다. 그러기를 불과 몇 주 만에 이 광산을 산 돈을 모두 뽑았다. 그리고 몇 년 후 꽤 큰 금맥을 발견했다. 이후 2층짜리 캐빈을 짓고 거기서 두 아이를 키웠다.
이제 얼마 있으면 66세가 되는 그는 은퇴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망설여진다. 몇 피트만 파 나가면 노다지가 나올 수도 있다. 금 캐기의 그 매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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