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의 풍속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워싱턴 DC에서 대량 발견됐다.
한국에서 군의관을 지낸 래리 로잰스키씨가 최근 공개하면서 빛을 보게된 구한말 사진은 100여장이 모아진 앨범 형태로 보존돼 있었으며 모두 원본으로 확인됐다.
“열흘 전 한 지인으로부터 얻게 됐다”고만 밝히고 출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꺼린 로잰스키씨는 “도자기 등 평소 한국 골동품에 관심이 있던 중 사진첩을 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손으로 제본한 사진첩 표지에는 ‘조세핀 & 챨리 혼쉘이 사랑이 담긴 크리스마스 인사와 함께’라고 쓰여 있으며 날짜는 1904년으로 명기해 이 사진들이 최소 104년 이상 된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사진첩을 열면 ‘송도에 있는 첫 외국인 주택’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는 첫 사진부터 마지막 사진까지 생생한 당시의 생활상들을 담고 있어 흥미를 끈다.
여성들만을 위한 성경공부 장소, 선교사와 학생들의 그룹 사진, 아이를 업고 있는 아낙네, 선교사 가족들이 피크닉을 가진 후 찍은 사진, 엄청난 크기의 삿갓을 쓴 남성과 양반 계급 여성들이 바깥 출입을 할 때 쓰던 쓰개, 다듬이질을 하는 여성 등등 지금은 잊혀져버린 모습들이 많다. 선교사 부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혼쉘 부부는 물지게를 지고 가는 남성들과 물동이를 인 여성들도 신기해 보였던지 뒤에서 셔터를 눌렀다.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망국의 치욕을 감당해야 했던 조선 왕조 관련 사진들.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특히 이중에는 국상 당시의 장면으로 추정되는 사진들이 시리즈로 모아져 있는데 하얀 상복을 입은 군중들과 커다란 상여, 뒤를 따르는 듯한 일본 군대의 행렬 등이 나타난다. 고종과 10대 소년으로 보이는 순종이 함께 찍은 사진도 있고 익종의 비였던 신정왕후가 거처했던 자경전에 있었다는 만세문도 보인다.
역사가들의 논란의 대상이 됐던 덕수궁의 대한문(大韓門)도 1904년 이전에는 대안문(大安門)이었을 가능성이 이번에 발견된 사진첩을 통해 확인된다.
대안문은 1897년 고종황제가 처음 붙인 것이 아니라 1593년 선조 임금이 의주에서 환도하여 ‘백성을 크게 편안하게 한다’는 뜻을 담아 지었다고도 하는데 1904년 4월 경운궁(덕수궁)에 의문의 화재가 발생해 불탔다. 그후 1905년 11월 체결된 을사늑약에 따라 1906년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경운궁을 복구한다는 미명 아래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개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04년 크리스마스 때 만들어진 혼쉘의 사진첩에 있는 ‘대한문’ 사진은 ‘대안문’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이와 함께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이 잘 관리가 되지 않아 수풀이 무성한 모습과 연꽃이 너무 많이 피어있는 경회루, 칼을 쓰고 있는 죄수 등의 사진들은 몰락해 가는 조선 왕조의 운명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다.
로잰스키씨는 “1971년 부산 ‘하얄리야’ 캠프에서 치과 군의관으로 일년간 일하면서 한국과 맺은 인연이 결국 사진첩을 얻는 계기가 됐다”며 “지금은 뭐라 평가하기 어려워 전문가의 감정을 받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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