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감소·경기침체 악순환 계속
제조업보다 급속히 나빠지는 무역
1880년 증조부가 회사를 설립한 이래 독일 쾰른의 칼 마틴 베커의 회사는 유럽뿐 아니라 세계 제조업의 현실을 반영해 왔다. 지금도 그렇다. 유럽과 아시아, 미국의 여러 제조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세계 스파크 플럭의 80%를 생산해 내는 벨커의 쉬터 회사는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주문이 작년보다 50% 줄어들자 벨커는 적자를 면하기 위해 경비를 줄이고 직원을 내보내는 것을 고려중이다. 제조업이 침체를 겪고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지만 하락의 깊이와 속도는 이례적이며 침체가 가속적으로 하락을 부르는 추세가 대공황 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제조업이 GDP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유럽의 경우 산업 생산이 전년에 비해 12%가 감소했다. 브라질은 15%, 대만은 43%나 줄었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마저 수출이 25% 줄면서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연방 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잘 버텨오던 미국도 지난 2월 산업 생산이 전년에 비해 11% 줄었다. 골드만삭스의 수석 유럽 전문가인 더크 슈마커는 “제조업이 벼랑 끝에서 떨어졌다”며 “이는 제2차 대전 이후 최대”라고 말했다.
제조업과 무역 패턴은 1929년의 금융 위기가 대공황으로 발전한 과정을 연상시킨다. 신용 경색과 소비자들의 공포가 제조 상품에 대한 수요를 줄이면서 세계 무역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뉴욕에 본부를 둔 ITG 연구소의 수석 경제학자인 로버트 바버라는 “제조업의 급속한 위축은 지난 4분기도 나빴지만 지금도 그만큼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말해준다”며 “전형적인 악순환이며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세계 무역이 줄면서 제조업 위축이 계속되고 이에 따라 실업자가 늘어날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무역은 생산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독일 수출은 전년에 비해 20%, 일본은 46%, 미국은 작년 4분기 연율로 23.6% 줄어들었다.
벨커는 이런 일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공장이 파괴됐던 2차 대전 때나 대공황 때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독일과 유럽을 주 무대로 활동하던 그의 회사는 최근 동유럽과 아시아에 새 시장이 열리면서 번창했었다. 지난 5년간 매출은 5,800만유로에서 1억유로를 넘어섰다.
최근 월가의 낙관론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외국 정부에 대한 추가 경기 부양안 호소에도 불구하고 세계 제조업 침체는 미국이 해외 덕으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는 것이 단기간에는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4%에 불과하지만 세계적으로는 18%, 중국의 경우는 33%에 달한다. 이는 지금까지 신용 경색의 피해를 덜 받았던 중국과 브라질, 인도 등 신흥 개발국들이 앞으로는 더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며 정부의 부양책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더라도 선진국의 수요를 감소시키게 될 것을 의미한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 제조업이 한물갔다는 오해에도 불구하고 제트 엔진과 기관차, 의료기기, 약품, 하이텍 제품 등 미국 상품에 대한 수요 감소는 미국의 성장을 저해할 것이다. 워싱턴의 미 제조업자 협회 수석 경제학자인 데이빗 허터는 “제조업은 미국 수출의 2/3를 차지하며 지난 20년간 어떤 분야보다 미국 성장에 큰 기여를 해왔다”며 “지난 10년간 세계 제조업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3%를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튼튼한 도요타 같은 회사도 생산을 줄이는 바람에 일본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 2~3월 도요타는 일본 내 12개 공장의 근무 시간을 평소보다 대폭 줄였다. 도요타는 3월말로 끝나는 이번 회계년도 기간 생산을 700만대로 20% 줄였으며 수십년래 처음 36억 달러의 손실이 날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의 생산량 통계도 더 악화될 전망이다. 자동차와 기관차, 제트 엔진 등 대형 철제품 제조회사들의 문제가 주목을 받아왔지만 수공예품과 의류, 보석 제조업체도 고통을 받고 있다. GDP의 16%를 제조업에 의존하고 있는 인도도 최근 10년 만에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 4월 이래 수공예품 수출은 55% 감소한 13억달러를 기록했으며 방직업계에서는 5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은행에서는 다이아몬드 제조업자들에 대한 융자를 재조정하고 있다. 지난 2월 6,400만달러에 달하는 경기 부양책과 감세 조치에도 불구하고 인도 방직업자들은 정부의 추가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델리의 방직업자인 라케시 바이드는 “우리는 방글라데시 같이 인건비가 싼 나라와 경쟁하고 있다”며 “중국과 같이 환율을 잘 조장하고 있는 나라나 베트남 같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는 나라와도 경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55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독일 가족 비즈니스의 상징인 쉬터는 어려운 시절을 여러 번 경험했다. 벨커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인플레 시대 트럭으로 현찰을 실어 직원 월급을 준 일도 있고 2차 대전 때 벽돌 하나가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공장이 철저히 파괴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상황이 그 때보다 나은 점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주문이 급속히 감소한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 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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