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TAUM’ 간판을 보면, 무슨 뜻인가 하다 곧 쓴 웃음이 나온다. 우리 말 ‘아리따움’의 취음(取音)이기 때문이다. 화장품 회사 체인인데 시내 곳곳에 있다. 그 결과 백화점은 몰라도 길거리에서는 외제 화장품들이 발을 못 붙이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 시내 간판을 들어다 보면 내가 영어에 경도되어 있어 그렇게 느끼는지, 우리 말 간판이 ‘돋보일’ 때가 많다. 세계화 물결이다.
강남 번화가에서는 외국인이 5%는 되는 것 같다. 그들 대다수가 원어민 영어선생이다. 신촌 네거리도 비슷한데 그 곳은 외국인 유학생들이다.
지하철에서도 안내방송에 우리 말 다음 영어가 뒤 따른다. 얼마 전에는 아주 어린 꼬마가 영어안내 방송이 나오기 전 미리 영어로 ‘다음 역은 선릉역. 내리실 문은 왼쪽’ 식으로 ‘정확한’ 영어로 복기하여 차 안 사람들이 망연하게 바라보았고, 아이의 할머니는 대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꼬마는 지나는 역마다 방송이 나오기 전 먼저 정확히 영어로 자랑하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승강장과 열차 사이가 넓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는 방송이 나오는 역들이 있다 .이에 대한 영어방송은 ‘Watch your step’이다. 간결한 표현이다. 다른 역에서는 ‘Watch your step’을 안 해도 된다는 말인가? (한 코미디 프로에 의하면 지하철당국은 넓은 사이를 고치지는 않고 20년간 그 방송만 한다고 한다). 동대문 역사박물관역에서는 우리 말, 영어, 일어, 중국어 4개어 안내가 나오기도 한다.
서울은 이제 실제적으로 국제도시다. 이와 연관되어 영어가 강조되고 있다.
남한산성에는 가장 높은 곳에 수어장대가 있다. 예전 인조가 그곳에서 청나라 침입군을 상대로 지휘하였다는 곳이다. 그런데 그 곳 영어 안내판은 ‘This is the pavilion….’ 운운이다.
처음 이것을 보고는 좀 당혹스러웠다. 요사이 한국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것이 영어인데, 이 간판은 1960년대 영어수준에 머물고 있어서였다. 그 후 관심 있게 보니 거의 모든 곳 설명이 ‘This is…’로 시작하고 있었다.
파고다공원 안내도 그 곳이 현대식 도시의 최초 공원이라고 소개하고 영어는 ‘This is the first park….’식으로 써 놓고 있었다. 파고다 공원은 그래도 ‘최초 공원’이 강조되어 ‘This is…’식으로 되어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다.
특별한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면 관광명소에서는 그런 표현이 좀 거북스럽다. 관광명소에서는 관광객이 주(主)다, 비록 명소 때문에 왔지만.
예컨대 남한산성의 경우도 ‘This is the pavilion…’보다는 ‘You’re looking at the pavilion….’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친근감이 온다. 일방적 정보의 전달보다는 보는 이의 관심을 유도하는 인상을 풍긴다. 누각이 아니라 관광객이 우선이다.
고속도로에서도 ‘표 파는 곳’에서 ‘표 사는 곳’으로 바꾼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Toll’을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릴지(For Whom the Bell Tolls) 모르는 것이었다.
내설악 백담사 영문 안내판도 마찬가지였다. 10줄 채 안 되는 설명에 오류가 10개는 족히 넘었다. 읽으라고 쓰여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절 문화재 설명은 우리말로도 쉽지 않다.
혹 이해에 도움이 될까 영어 설명을 보면 전문용어인 우리말을 그대로 영어로 취음해 놓은 것이 보통이다. 영어 설명을 읽는 것보다 눈앞에 있는 문화재를 그냥 감상하는 것이 최소한 골치는 안 아플 것이다. 최소한의 관광객에 대한,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배려가 없는 전시에 불과하다.
정요진
한국사이버산학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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