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제 인물 흥남철수때 피난민선 빅토리호 탄 지니 최씨
지니 최씨가 ‘SS 메러디스 빅토리’호 상선 사진을 온라인을 통해서 보면서 그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한겨울 1박2일 배타고
장승포에 내려 ‘새 삶’
“배고픈 기억 가장 많아”
한미가정상담소에서 프로그램 디렉터로 자원봉사하고 있는 지니 최(69·은퇴 의사)씨는 다음 주 토요일(12일) 샌피드로 항구에서 ‘SS 라인 빅토리호’ 기념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감회가 남다르다. 한국전 당시 원산에서 7,009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이 상선 탑승 피난민은 아니지만 자신도 흥남부두에서 ‘SS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1만4,000명의 피난민들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함흥이 고향인 최씨는 1950년 전쟁 당시 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서 흥남부두로 와서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강추위 속에서 노숙하면서 며칠을 기다려 크리스마스이브에 ‘SS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크리스마스 날 거제도 장승포에 도착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당시 8세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최씨는 흥남부두에서 부산을 거쳐서 장승포까지 1박2일을 항해하면서 무척 춥고 배고팠다는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간판 위에서 선원들이 잡은 오징어를 얻어먹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크리스마스 기적의 배’로 불리는 이 상선은 부산으로 갔지만 피난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입항을 거절당하고 거제도 장승포에서 내렸다. 최씨는 “피난민들을 거제도 중·고등학교 강당에 모아놓고 흰쌀밥으로 만든 주먹밥을 주었는데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거제도에 잠시 머문 후 가족과 함께 부산을 거쳐서 서울에 온 최씨는 경기여중에 진학해 이화여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67년 홀로 테이튼 오하이오로 50달러만 들고 유학길에 올라 무척 힘들 상황에 많이 부딪쳤지만 전쟁 당시 너무나 어려운 일을 겪었기 때문에 헤쳐나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최씨는 “그 당시 흥남에서 배를 타지 못했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너무나 아찔하다”며 “한 명의 피난민들이라도 더 배에 태우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던 분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하이오주에서 마취과 의사로 30여년 동안 일하다가 6년 전 은퇴하고 오렌지카운티로 이주한 최씨는 오하이오에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에 깊숙이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한미가정상담소뿐만 아니라 미국 병원에서도 자원봉사하고 있다.
<문태기 기자>
tgmo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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