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라델피아에서 있은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청첩장 얘기를 하니 문득 오래전 버지니아에 사는 한 친척에게서 보내왔던 청첩장을 받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유럽이 더 가까이 느껴지지만 그 당시의 불란서 파리에서의 결혼식은 한창 고생을 지나온 우리에게는 달나라 까지는 안되어도 마치 먼 나라 얘기 같았다.
물론 일하는 곳에서 빠지면서 갑자기 시간을 낸다는 것도 힘들고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아 결국 포기 하고 말았다.
이번 친구 아들이 보낸 청첩장의 결혼 장소는 우리 집에서 왕복 5시간 거리였다. 마침 신랑 측인 친구의 배려로 60명 정도 타는 버스가 대절되고 그래서 우리는 편안하게 그곳을 다녀 올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 준비한 떡 한 봉지씩과 음료수들을 받아드니 우리는 어느새 소풍가는 학생들이 된 기분이었다. 버스 안은 어느새 이야기, 웃음꽃이 피었다.
참 우리도 오래전 꽃피던 그 5월에 결혼식을 올렸지 하며 그때일이 아련한 추억처럼 떠올랐다. 세월은 어쩌면 우리 기억보다 더 빨리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철없던 어린 나이에 공부 한다고 미국 와서 이제 돈을 벌기 시작 하던 때였는데, 그래도 워싱턴 한복판 16가에 있는 교회에서 우리가 존경하던 황재경 목사님이 주례까지 서 주셔서 무사히 결혼식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다. 그런데 그 결혼식 날 미리 예약 했던 꽃이 시작하기 30분 전이 되도록 도착하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날이 일요일이였는데 날씨는 왜 그리도 더운지 안 그래도 속이 타던 우리는 온몸이 땀이 배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우리는 그날 아침 그 미국 교회에서 예배 때 꽂아 놓았던 꽃과 그곳 직원이 꺾어온 교회 마당의 야생화들을 리본으로 대강 묶어서 신부 꽃도 만들고 신랑 꽃은 큰 꽃 하나, 들러리도 꽃 몇 송이가 전부였다.
시간이 지난 후 우리 결혼사진을 보던 친구들이 얘기를 듣고도 일부러 이 꽃은 무슨 꽃이냐고 물으면 나는 “마당에서 꺾은 야생화”라고 하며 친구들과 한바탕 소리 내어 웃던 기억이 난다. 그때 마침 일요일이라 여는 꽃집도 없어서 황당하고 초조했던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거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도 그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알고 보니 꽃을 배달하기로 한 사람이 토요일 늦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정신없이 자다보니 일요일 오후였다면서, 주인이 대신해서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 아들의 결혼식은 예정대로 잘 진행되었다. 또한 신랑 신부가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호텔 안 하객들도 거의가 한국사람이었다. 식사 후에는 약간 어둡게 불을 조절한 방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그들이 준비한 모자를 쓰고 손가락에 반짝이는 불을 양손에 끼고 흔들며 오랫만에 모두 신나게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우리는 신랑 신부의 영원한 행복을 빌며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오는데, 버스 안은 불을 꺼서인지 한 밤의 기숙사처럼 모두 잠깐이지만 수면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혜란
워싱턴 수필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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