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황망히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니 지난 일들이 영화필름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오래전 누군가 얘기했듯 어머니가 계시면 가슴에 어머니 수호신(守護神)이 함께 있어 우리를 항상 도와준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내게 어머니는 그렇게 또 다른 신과 같으신 분이셨고 언제라도 어떤 길이 맞는지 알려주시는 바로 내가 가는 길목의 등대셨고 나침판이셨다. 그런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셨단다. 비행기 안에 자리 잡고 앉으니 굳어있던 심장은 그제야 한 여름에 얼음이 녹듯 방울방울 이슬 되어 눈물로 흐른다.
경북 풍기에서 태어나신 어머니는 영주로 학교를 다니시고 고집 센 어머니는 일본으로 공부를 하러 가시겠다고 우기셨다고 했다. 완강한 외할아버지가 결국 지셨는지 어찌된 일인지 그 부분은 잘 말씀 하시지 않지만 얼마나 집안에 난리가 났었을 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시대에는 여자들 초등학교도 잘 보내지 않던 때이니 말이다. 엄마는 일본으로 가셔서 은행에 취직을 하시고 혼자서 주판을 얼마나 연습하셨으면 엄마를 따라가는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6.25 후에 야간 대학에 다니셨고 우리에게 강조하시는 말씀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공부해라”였다.
그 당시 어머니가 만나는 30명 정도의 소위 대학을 졸업한 신여성 그룹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 한국 최초의 여자 변호사라는 이태영 씨도 계셨던 것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6.25 이후 한국의 빠른 재건을 위해서는 여자들이 교육을 받고 여자들이 함께 도와서 일어나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 하셨다. 그래서 아마 형제자매 중 딸 셋을 가기 싫다는 약학 대학으로 밀어 넣으셨나보다. 이후 어머니는 전문학교를 세우시고 아침 라디오 방송 여성 교양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셔서 나도 가끔 방송국에 따라갔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젊은이의 교육이 우리나라의 미래라고 항상 강조 하시며 특히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 하셨다.
미국에서 태어난 딸아이가 한국말을 더 배워보겠다고 또 할머니를 더 알고 싶다고 연세학당을 1년 다녀온 후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한국에 가서 할머니를 만나 우리 3대(할머니, 엄마, 그리고 본인) 세 사람을 비교해보니 내가 아무리 미국 의사라고 조금 우쭐대도 지금 보니 할머니가 제일 스마트하셔서 엄마나 내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분”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돌아가신 엄마를 만나러가는 비행기 안에서 입안에 맴도는 소리는 그저 “엄마, 엄마"였고 그 소리는 나를 6살 소녀로 되돌아가게 했다. 언젠가 엄마 곁에서 잠이 들었다가 한밤중에 깨어보니 겨울 빙판에서 넘어지셨는지 멍이든 무릎을 쓰다듬으시며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계시던 어머니... 그렇게 항상 계획하시고 바쁜 시간 때문에 우리는 투정하고 외롭다는 불평도 많이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우리가 가는 길목에 항상 계셨다. 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절대 남의 아이들 흙 묻었다 말하지 마라. 너의 옷에, 너의 자식의 옷에 더 더러운 변도 묻어 있음을 기억하라. 너희들이 많이 배워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절대 분별없이 나서지도, 잘난 척도 또 자만하지도 말아라. 항상 자신을 낮추며 살아가야 하며 누구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그들을 바른길로 안내하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약속은 꼭 지켜라.”
정말 많은 세월동안 나는 나의 어머니 수호신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고, 비록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안 계시더라도 어머니는 내 마음 속에 영원히 함께 계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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