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북한 핵개발 역사
▶ 풍부한 우라늄 보유 남다른 애착
북한이 방송을 통해 핵실험 성공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12일(이하 한국시간) 제3차 핵실험에 서 또다시 핵 능력을 과시한 북한의 핵 개발 역사는 6·25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정전협정으로 ‘무력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한 북한 김일성 주석 은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핵개발에 관 심을 두고 전문인력 양성을 시작했다.
1955년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에 핵 물리강좌를 개설했고 다음해 과학원 에 핵물리실험실을 신설했으며 1965년 소련의 협조로 영변에 연구용 원자로 를 건설했다.
북한은 1980년대까지는 원자력 기초 교육과 연구에 초점을 맞추며 박천과 평산, 선천 등에 우라늄광산과 가공시 설을 마련하는 등 기본시설 구축에 주 력했다. 핵개발에 대한 북한의 이러한 남다 른 애착은 매장량이 2천600만t, 가채 량은 약 400만t으로 추산될 정도로 풍 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우라늄에서 시 작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보다 많 은 우라늄을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활 용하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북한은 1986년 1월부터 5MW급 원 자로를 흑연감속로 방식으로 가동했지 만,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1989년께 원 자로 가동을 중단했다.
원자로 가동 중단에 이어 북한은 1992년에는 한국과‘ 한반도 비핵화 공 동선언’을 채택했으나 이듬해 국제원자 력기구(IAEA)의 영변 특별사찰 요구에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맞섰 다. 1993년 6월 북미 공동성명을 통해 NPT 탈퇴를 유보했던 북한은 1994년 이뤄진 북미 제네바합의로 주요 핵시 설을 동결했다.
당시 제네바 합의는 북 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미 국이 북한에 2천MWe 경수로 원자로를 건설해 주기로 했다. 이후 북한은 2005년 2월 자위를 위 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선언했고 그 해 5월에는 영변의 5MW급 원자로에 서 폐연료봉 8천 개를 인출하는 작업 이 완료됐다고 발표했다.
이만한 양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할 경우 무기급 플 루토늄 24∼32㎏을 추출해 3∼5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 된다.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다음해인 2006년 10월9일 북한은 함경북도 길 주군 풍계리 지하에서 처음으로 플 루토늄 방식의 핵무기를 실험했으며 2009년 5월25일에는 같은 방식으로 제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1차 핵실험의 폭발력은 1킬로톤(kt·TNT 폭약 1천t의 폭발력)이었고 2차 핵실험은 2∼6kt가 량으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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