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의 불경기로 구직란이 심해지자 불법택시 업계로 뛰어드는 한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 간에 타운내 한 식당 밀집 건물에서 손님들이 밸릿파킹에 맡긴 자신의 차를 기다리고 있다
오후 5시 출근 오전 5시 퇴근. 하루 12시간, 주 6일 근무. 요즘은 수입이 줄어들어 한달 2,000달러 채우기도 벅차다.“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나? 불경기와 더불어 경쟁까지 치열해져 이 직업도 그만둬야 할까 보다.” 타운에서 불법택시 운전기사로 일하는 김모씨의 고민이다. 불경기로 구직이 힘들어지면서 불법택시 업계로 뛰어드는 한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기존 업소 운전기사로 일하는 경우도 있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회사(?)를 차리기도 한다. 또 가족들이 아르바이트로 밤에만 택시 운전을 하는 업소도 있고 단골 중심으로 혼자 뛰는 한인들도 많다. 불법택시 운전기사의 수입이 한때는 월 5,00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탄탄했다. 세금을 내는 것도 아니다. 하룻밤에 300달러를 넘게 가져갈 때도 있다. 웬만한 회사원 월급보다 많은 수입이다. 불경기 이전의 신바람 났던 시절의 이야기다. 요즘은 하루에 100달러 채우기도 힘들다. 어쩌다 못된 고객이라도 만나면 내내 술주정을 받아 줘야 한다. 반말은 기본이고 때리려고 하는 손님들도 있다. 돈도 안 되고 인격 모독까지 당할 때마다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딱히 직업 찾기도 어렵다는 생각에 꾹 참고 있다고 김씨는 하소연했다.
운임 저렴·이용 편리해 일부 한인들에겐‘고마운 발’
한인 500여명 영업 추산… 하루 80달러 벌기도 힘들어
간혹‘나쁜 기사·나쁜 손님’ 있어 불상사 일으키기도
저렴한 가격 편의성
정부의 지속적인 단속에도 불법택시가 성업하는 이유는 물론 저렴한 가격과 편의성 때문이다.
LA 공항에서 한인타운을 기준으로 합법택시는 45달러 정도의 요금에 15% 팁을 합치면 60달러 가까이 내야 한다. 하지만 불법택시는 30~40달러면 충분하다. 영어에 어려움을 겪는 한인들에게는 합법택시보다 불법택시 기사가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것도 성업 이유 중 하나다.
요즘은 한인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합법택시도 많아져 언어 소통에 문제가 없기는 하지만 대다수 한인들은 불법택시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낮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발이 돼 주고 바쁜 고객을 위해 식사나 마켓 배달 서비스까지 척척 해준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 픽업도 해준다. 단골 택시를 만들면 만취가 돼도 집까지 데려다 주는 편리함 때문에 이들을 찾곤 한다.
취객이 LA 한인타운에서 합법택시로 세리토스집으로 갔다가 출근한다면 합법택시는 마일 당 2달러70센트×25를 부과하므로 67달러50센트와 더불어 기본요금, 팁을 합치면 80달러를 훌쩍 넘어선다. 왕복으로 따진다면 160달러 이상을 내야하는데 불법택시는 단돈 60~70달러로 동시 픽업이 가능하다.
하루 80달러도 어려워
불법택시 운전기사는 콜(고객 운송)당 수입의 20%를 업주에게 줘야 한다. 업주는 고객들의 전화를 받아 운전기사들에게 연결시켜 주고 백업 등을 주선하는 일종의 상황실 역할을 재준다.
동시픽업으로 LA에서 30여마일 거리의 오렌지 카운티 사이프러스까지 80달러를 받았다면 뒤에서 차를 타고 따라오는 또 다른 운전자와 반반씩 나눠 갖는다. 회사 20% 입금액 16달러를 빼고 남는 64달러를 나누면 32달러를 받는다. 하룻밤에 3~4건 이상은 콜을 받아야 100달러 정도 손에 쥐지만 불경기가 심한 요즘은 80달러 채우기도 벅차다는 것이 야간 불법택시 운전기사로 일하는 김씨의 설명이다.
한때는 100달러까지 받았지만 요즘은 워낙 많은 불법택시들이 덤핑경쟁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가격 받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간 허비가 많은 장거리 보다는 타운 내 동시 픽업이나 택시 서비스가 수입 면에서는 더 좋다고 한다.
김씨는 “경기가 좋을 때는 팁도 많았어요. 팁으로 회사 입금 채워주고 손님에게서 받는 돈은 고스란히 수입이 되곤 했는데 요즘은 불경기라 팁도 줄어들어 어렵습니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개스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미니밴이나 배기용량이 큰 고급 승용차를 가진 운전기사는 개스 넣기가 무섭다.
규제 없어 누구나 뛰어들어
한인들이 불법택시 업계에 뛰어드는 이유는 자동차만 있으면 가능하다는데 있다. 체류신분도 묻지 않는다. 차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더러는 불법체류 신분으로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도 있다.
아르바이트 회사원도 있고 학생들도 있다. 한 때 잘나가던 업소 사장, 목사, 심지어는 박사학위 소지자도 있다. 돈이 없어도 좋고 운전 기록이 나빠도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
이로 인한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
직업의식이 없다보니 취객 손님들과의 마찰도 잦다. 취객과 언쟁을 벌이다가 길거리에 내버려두고 가버려 음주운전 사고까지 유발시키는 질 나쁜 운전기사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고객을 싣고 가다가 요금을 더 내라며 길거리에 내려놓고 가기도 하고, 만취고객의 주머니를 뒤져 금품을 갈취하는 사례도 있다.
얼마 전 음주운전으로 한국으로 쫓겨 간 LA 총영사관 선거관리원도 불법택시에 당한 케이스다. 보험이 없어 사고를 내도 보상이 되지 않아 고스란히 고객이 책임져야 할 때도 있다.
합법 전환은 그림의 떡
LA를 비롯해 한인 밀집지역에서 영업하는 불법택시는 대강 300여군데는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파악이다.
타운 내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A택시의 K모 대표는 “불법으로 운영돼 정부에 등록된 것도 아니어서 정확한 숫자 파악은 어렵지만 줄잡아 300개는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들 중 제법 규모를 갖춘 업소는 3~4군데. 이들 업소마다 대략 50명 안팎의 운전기사를 고용한다. 이들이 입금하는 콜당 20%의 수입금만으로도 이들 업소는 든든한 재정을 자랑하고 있지만 기사들의 허리는 더욱 가늘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4년째 불법택시 운전을 한다는 조모씨는 “한국에서 나온 대형 지상사들은 요금을 한 달씩 결재해 주는데 업주가 돈을 받아 놓고 기사들에게 제대로 주지 않는 곳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이래저래 기사들만 죽어난다”고 말했다.
조씨는 요즘 시에서 적극 권장하는 TCP 운송면허를 받아 합법으로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이것 역시 쉽지가 않다. 우선 운전기록이 좋아야 하고, 공항 손님을 픽업해 목적지 또는 관광 목적으로만 영업해야 한다. 기타 서비스는 면허 종류에 따라 달라지므로 합법 면허 따기가 수월치는 않다. 또 동시 픽업 서비스는 불법이며 보험료도 비싸다. 재정적인 어려움이 합법 운송면허 발급의 걸림돌이 된다는 얘기다.
LA 불법 운전자 500여명 추산
불법 택시는 한인사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LA 시내에서 영업 중인 불법택시는 대략 2,000~3,000대에 달하는 것으로 LA시는 추산하고 있다. LA시 교통국과 경찰국의 합동단속에 불법영업 혐의로 걸려드는 한인들은 전체 단속의 25%가량 되는 것으로 미루어 LA에서 영업 중인 한인들은 대략 500여명으로 추정된다.
LA시는 지난 2006년부터 꾸준히 허가 없이 영업하는 불법택시 단속을 펼쳐 매년 1,000여명 이상의 불법택시 운전기사를 적발하고 있다. 적발 차량은 30일간 압류되며 운전자는 경범혐의로 400~1,200달러의 벌금형을 받는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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