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재 미 국영 MBN-TV 에디터 훼어팩스, VA
2007년 3월 어느 날, 산에 같이 다니던 산우들이 갑자기 한인마라톤클럽을 만든단다. 당시 나는 과체중이었고 술, 담배에 그리고 직장에서는 번번이 생방송을 하니 스트레스가 아마 이 세상에서 제일 많은 인간이라고 떠들 때였다. 마라톤은 커녕 26.2 마일 걷기도 버거울 때였고 의욕은 있으나 엄두를 못 내었을 때이다.
그러나 마라톤을 같이 하자는 말도 없고… 같이 산에 다닌 세월이 얼만데…. 요샛말로 ‘팽’을 당한 것이다. 하긴 나이가 그들보다 많고 과체중이니 나의 부상을 염려한 친구들의 배려를 모를리가 없지만 그래도 서운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 뒤 클럽 창설 멤버에 끼지도 못하고 가입은 더 더욱 안 되었다. 나는 은근히 화가 났다. 오기가 발동을 했다.
나는 버지니아 클립턴에 있는 아쿠관 트레일에서 혼자 비밀리에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꼭 마라톤 클럽에 가입하여 풀코스를 기필코 완주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 우선 식사량을 줄이고 언덕에 오를 땐 뛰고, 내리막길에는 천천히 걸었다.
드디어 일년 후 170 파운드의 몸을 145 파운드로 내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008년 5월 클럽에 나타났다. “이정도면 되는 겨?” 그리고 옷을 벗어 보였다. 그들은 나를 반가히 맞아줬다. 하여튼 이렇게 어렵사리 클럽에 들어 갈 수 있었고 그리고 일년을 더 연습을 한 결과 클럽 회원들의 협조로 2009년 5월 후레드릭 마라톤에 참가하여 완주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2010년에는 세계 4대 마라톤 대회인 뉴욕 마라톤도 무사히 완주를 하는 영광도 맛보았다. 이 경기에 참가한 그 자체, 내가 이 건장한 젊은이들 속에 끼어 있다는 그 기쁨은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이 경기를 위해 나는 머리도 인디언 모호크족처럼 깎았다. 기필코 해내겠다는 각오의 표시였다.
26.2마일 중 23마일 지점쯤에 오니 더 이상은 몸이 나가질 않는다. 그 뒤 어떻게 뛰었는지 생각이 안 날 정도이다. 나의 모든 에너지가 소진 되었다. 그래도 뛰었다. 정말 죽을힘을 다해 피니시 라인을 밟고 메달을 받는 순간 울음이 터져 나왔다.
창피한 것도 모르고 엉엉 울며 땅에 주저 않고 말았다. 만일 이 친구들을 잠깐의 서운함으로 외면을 했다면 이게 가능했을까? 만일 이 워싱턴 한인마라톤클럽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그 뒤 우리 방송국 인터넷에 사진을 올렸는데 졸지에 ‘마라톤 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우리 방송국 직원중 한국인은 나 하나이다. 하니 유일한 한국인, 마라톤 맨의 품위 유지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할 수 없이 뛰어야한다. 임무가 크다. 몇주 전, 6번째 마라톤클럽 창립 기념식을 조촐하게 가졌다.
정말 감사하다. 그동안 우리 클럽은 많은 경험과 기술을 축적하였다. 이제는 워싱턴 동포들에게 완주가 목표가 아닌, 건강을 되찾는 방법으로 올바른 걷기부터 그리고 천천히 뛰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더 나아가 완주를 하도록 유도함이 어떨까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걸을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것 아닌가? 언젠가는 우리가 뛰지도 못할 날이 올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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