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이 언론에 크게 논의되고 있다. 북한의 대남 또는 대외 선전용 웹사이트인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 70대 후반 이상의 사람들은 우리민족끼리라는 이 말을 60여년 전에 귀가 따갑게 들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그와 함께 또 다른 말이 생각 날 것이다.
“양군철수[兩軍撤收]”다. 얼마나 듣기 좋은 말들이었나. 여기저기 “우리끼리” “양군철수”라는 벽보가 나붙고 새벽 골목길에 누군가가 뿌려놓은 ‘삐라’가 떨어져 있는가하면 눈이 시뻘게서 벽보를 뜯고 삐라를 치워버리는 청년들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아마 서북 청년단원들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좌익계 선생들이 노골적으로 학생들을 선동했고 어른들끼리도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었다. 중학생이었던 우리야 이말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 말 들으면 저 말이 옳은 것 같았을 뿐 정치문제에 큰 관심을 갖기에는 너무 어렸었다.
결국 미국과 소련 양군은 철수했고 남북은 요인교환이다 뭐다해서 대화가 되어가는듯 하였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6:25전쟁! 피에 맺힌 6:25전쟁! 그 처참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6:25 전에 38선에서 자주 총질이 오간 일이 있었지만 설마 북쪽이 그렇게 큰 힘으로 쳐내려 오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그 당시 국방장관은 신성모라는 한 덜 떨어진 인간이었는데 “각하 전쟁이 나면 아침은 개성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게 될 것입니다” 하였단다. 조직 내의 불순분자들을 대강 정리했던 경찰과는 달리 군대 안에는 꽤 많은 이적분자들이 남아있는 것도 모르고 큰 소리 치면서 파티나 즐기며 아첨이나 떨던 덕택에 거의 전국이 초토화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전혀 “우리”라고 일컬을 수 없는 정복자 아래서 상상할 수 없는 고생을 했고 수많은 인재들이 납북 또는 월북했다. 그들은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었다. 전혀 대화가 안되는 사람들이었다. 오죽했으면 그 쪽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전쟁 뒤에 극우로 변해서 합법, 불법의 복수를 했으랴.
어떤 학자가 전쟁 중에 가장 잔인한 전쟁은 종교전과 사상전이요 그 다음이 동족간의 전쟁이라 했다던가? 그렇다고 보면 우리는 가장 잔인하고 또 잔인한 전쟁을 치른게 아닌가. 이제 그들은 또다시 ‘우리민족끼리’를 표방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방적으로 밀어 부치는 사람들과 ‘우리끼리‘의 대화가 가능할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의가 그들을 변화시켰는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강경책이 그들을 더 적대적으로 만들었는가? 둘 다 아닌 것 같다. 그들의 과거 60여년 간의 행적을 살펴보면 어떤 일관성이 뚜렷이 보인다. 그 일관성이 어떤 것인가. 그 일관성의 정체에 대한 깨달음이 남북의 평화통일의 첫걸음이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겠다. 왜냐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쓸데없는 보수 진보 논쟁으로 번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 우리민족끼리 대화가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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