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거른 막걸리 젖빛처럼 뿌옇고/ 큰 사발에 보리밥, 높기가 한 자로세./밥 먹자 도리깨 잡고 마당에 나서니/ 검게 탄 두 어깨 햇볕 받아 번쩍이네/ 옹헤야 소리 내며 발맞추어 두드리니/ 삽시간에 보리 낱알 온 마당에 가득하네/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보이느니 지붕 위에 보리 티끌 뿐 이로다./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닌데/ 무엇하러 벼슬길에 헤매고 있으리오.
다산(茶山) 정약용의 ‘보리타작(打麥行)’은 농민들이 보리타작을 하는 현장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한시이다. 농민들이 보리타작이라는 공동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을 통해, 노동이야말로 참으로 즐거운 삶이요 건강한 삶임을 말해 준다. 육체와 정신이 통일된 농민들의 건강한 모습이 진정한 삶의 표상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지 않았네’ 와 ‘무엇하러 벼슬길에 헤매고 있으리오?’와 같은 부분을 통해서는,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어 벼슬길에서 헤매며 시달렸던 작자 자신의 삶을 반성하기도 한다.
다산은 주로 사회 제도의 모순이나 백성들의 삶의 고뇌 등을 작품의 주제로 삶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히려 건강한 농민의 모습을 예찬함으로써 그런 경향에서 벗어난 듯 하지만 나라와 백성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의 일반적인 주제 의식과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추운 겨울 동안 눈 속에서 생명력을 발하는 보리는 바로 우리 한민족의 강인한 심성을 대표한다. 특히 보리는 춘궁기(春窮期)라는 "보릿고개"를 넘는 백의민족의 애환을 달래는 조련사의 역할을 해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자락을 차지한다.
나는 봄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 민족의 운명과 같았던 그 "보릿고개"가 문득 떠 오른다. 우리 한인 이민자들이 축복의 땅 미국에서 살고, 또 우리의 조국이 "한강의 기적"을 구가하며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이직도 이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수천만의 인구가 아직도 그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고 있는 참담한 현실 앞에 가슴이 아려온다.
최근의 유엔 소식통에 의하면 빈곤국 질병퇴치 사업을 벌이는 국제단체 ‘글로벌펀드’는 말라리아, 에이즈, 결핵 등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필요한 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펀드의 고문인 스코트필러 박사는 "빈곤은 단순히 기아의 고통을 유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말라리아, 폐병, AIDS 등의 질병을 확산한다"고 밝히고 "불행하게도 빈곤은 빈곤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선진국은 빈곤국의 개발을 도와야 할 책임과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리는 북풍한설에서도 얼어 죽지 않은 강인함이 있다. 보리의 역할은 춘궁기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 우리의 삶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의 역할을 해 준다는 점에서, 우리 한인사회에서도 보리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우리 민족의 전통적 가치를 이민 1 세가 차세대에 연결해 주는 미덕을 보여주고, 이 같은 미덕을 통해 후계자를 키워주는 아름다운 전통이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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