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무튼, 어느날 엔가 부터 들고 다니는 가방 속에 기본 장비 하나가 더 늘어났다. 우선 접이식 휴대전화가 한대 있고 작은 컴퓨터 그리고 지난해 우리 집 삼남매에게서 생일 선물로 받은 블랙베리(Black berry)한대를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늘 충전을 해 놓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지만 그래도 내 가방 속에 요즘 젊은이들이 다 갖고 다닌다는 첨단 기기를 넣고 다닌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을 뿐, 사실 내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물건이어서 가방만 무겁다. 차에는 당연히 길 안내를 해주는 내비게이터가 한구석에서 늘 대기하고 있다.
이런 첨단 기계들을 들고 다니면서 한 가지 편리한 것은 전화번호를 외울 일도 없고 계산을 하려고 머리를 굴릴 일도 없으며 모르는 곳에서 길을 잃어도 주춤거릴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궁금한 일이나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인터넷에 연결해서 즉시 알아낼 수가 있으니 정말 편리한 세상에 사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첨단기계에 예속되어 살아가고 있으며 이를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첨단 기기의 노예라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닐성 싶다.
이처럼 기계에 의존해서 살아가다 보니 우리가 모두 알게 모르게 살아있는 로봇이 되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가 되었다.
지난 80년대만 하더라도 낯선 곳에 가려면 지도를 꺼내들고 가려는 곳의 길을 찾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공부하고 난 뒤에 목적지를 향해 떠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차에 설치된 내비게이터가 입체지도를 보여주면서 음성으로 길 안내는 물론 도착 예정 시간까지 알려주고 있으니 운전자는 내비게이터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그야말로 디스토피아 적 소설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에서 헉슬리가 예언한 바대로 과학의 발달 덕분에 인간이 모두 인공적으로 제조되는 “멋진 신세계”가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사는 셈이다.
이런 세상에서 머릿속에 들어 있어야 할 지식이나 정보 등을 모두 기계를 통해서 원하는 만큼 신속하게 얻을 수 있게 되어 굳이 머리를 쓸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우리의 뇌가 점점 퇴화하고 있지나 않은지 은근히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까닭인지 이제는 자기 집 전화번호도 기억 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 있으면서도 아무도 그런 현상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새롭고 신기한 첨단기기에 익숙한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눈치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며칠 전 우리나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초청 강연회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은 학생들에게 “누구를 따라 할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야한다”고 강조하면서 “따라하거나 모방하기보다는 한국만의 고유한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는 이 강연에서 고유한 길을 찾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창의력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나만의 고유함” 을 강조하는 창의력에 바탕을 두고 있는 세상이다. 남을 따라가거나 남을 모방해서는 생존이 어려운 세상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해 주어야 할 일은 창의력에 관심을 두고 이를 길러주는 일일 것이다.
고기를 잡아주는 일이 아니라 고기 잡는 나만의 독특한 방법을 창안하도록 격려하고 가르쳐 주는 일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앞날을 개척해 나가는 힘을 길러 주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때에 가정상담소에서 격주간으로 운영하고 있는 열.공.부.모 교실에서 “창의력”을 주제로한 강의와 실습은 많은 학부모에게 창의력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행사였다.
이러한 모임이나 행사가 학부모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을 넘어서 백년대계라는 교육적 차원에서 창의력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도 함께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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