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는 ‘후한서’에서 정저지와(井底之蛙)로 말한다. 그 의미는 우리네 속담으로도 잘 알려진 “우물 안 개구리”이다. 내가 보는 세상이 가장 크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위대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가치 있다고 믿고 사는 사람을 말한다. 어느 날 개구리와 거북이가 우물가에서 만났다.
개구리가 거북이에게 “나는 걱정도 없고 근심도 없소. 우물 안은 안전하기도 하고, 나에게 최고의 공간이기 때문이요. 이 세상에서 이 좋은 우물을 차지하고 있는 재미를 당신은 모를 것이요. 그 말을 듣고 있던 거북이가 개구리에게 바다 이야기를 해준다.
“이보게, 개구리 내가 살고 있는 바다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잴 수 없는 크기라네. 그 깊이와 넓이는 물론이요 그 안에 있는 신비함과 오묘함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네. 우임금 때 십년 동안 아홉 번의 큰 홍수가 있었지만 바닷물은 늘어나지도 않았고 탕 임금 때에는 팔년 동안 일곱 번 가뭄이 들었지만 바닷물은 줄지 않았다네. 그곳이 내가 살고 있는 바다라는 곳이네” 이 말을 들은 개구리는 깜짝 놀라 꼼짝도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사는 곳에 한정된 까닭이며, 여름 벌레가 얼음을 말할 수 없는 것은 한정된 시간에 고정되어 산 까닭이고, 정직하지 못한 지도자가 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것은 세상적인 가르침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장자가 ”정저지와”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 속한 사람은 이 땅에 것이 최고이고 가치 있는 것이라 믿고 산다. 거듭났다 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도 예외는 아니다. 성공과 출세, 권력과 명예, 돈과 물질, 큰 건물과 사람 수로 교세를 자랑하는 것이 신앙적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믿고 또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 울타리를 쌓고 깊고 큰 우물 만을 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십자가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다.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웬 일인지 언행의 일치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척 만 하고 겉과 속이 다르게 산다.
우물(세상)에서 벗어나려고 하기는 커녕 더 큰 우물을 만들어 사람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살게 한다. 분명 거북이가 살고 있었던 우물(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바다(천국)가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 흘려 죽으심과 부활로 하나님 나라(바다)를 소유한 사람들이 고작 하는 일이 빚을 내서 우물을 파고 세워서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서야 되겠는가!
예수님은 바다를 어떻게 말씀하실까? 거듭난 사람에게 천국(바다)이 임하고 있다 말씀하신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리고 거듭난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중생한(거듭난) 하나님 나라(바다)는 결코 세상의 어떠한 물질적인 화려함과 시설, 가치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세상의 것으로 우물을 만들어 폼 잡고 멋 내는 일은 멈춰야 한다. 그리고 천국 사람 답게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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