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이 봄비가 내리고 있다. 연중 초록 색상이 가장 선명하고 아름다운 계절 5월은 어머니날이 있는 달. 창 밖 먼 발치로 보이는 아담한 정자가 하나 있고, 계단식으로 모양 다르게 만들어진 작은 연못 아이비스로 둘러싸인 한 가운데 분수가 있다. 비키니(Vikini) 섬에서 원자폭탄 실험할 때 발생한 구름모양 또는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단란하게 유영(遊泳)하는 고래가족 숨 쉬며 내 뿜는 물줄기처럼 포말을 날리고 있으니 생동감이 넘친다. 아무리 바삐 인생로를 가는 나그네일지라도 잠깐 쉬었다 가고 싶은 정경이다. 나는 수시로 이 풍경을 즐길 수 있으니 운이 좋은 편이다. 포치에 앉아 하얀 레이스가 덮인 마름모꼴 유리 테이블 위에 누가 선물 했나 플라멩고 플라워 반짝 반짝 윤기 나는 잎 사이로 하트형 얼굴을 내밀고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고 웃고 있다. 한정 있는 스페이스에 해 묵은 분재 뿐인데 어머님이 쓰시던 아담한 맷돌과 두 쌍의 방망이가 달린 다듬이들이 서로 마주 보고 나를 위로해주고 있다. 인생 고독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힘이 되어주고 무진장의 에너지 또한 공급해주고 있다. 맷돌 다듬이돌 매만지며 어머니 살아 계신 것 처럼 사랑을 느끼며 못 다한 대화를 나눠 본다. 잘해 드린 것이 없는 딸이었기에 더욱 애절하게 후회가 되는지도 모른다. 갸날픈 몸매에 일하는 분들이 많아 다듬이질 하신다던가 맷돌을 직접 돌리시는 것을 본 기억은 없다. 그러나 멍멍개 짖는 한겨울밤 이모님과 맞다듬이질 하실 때는 그 리듬을 즐기시는 듯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보였었다.
아마 내가 일곱 살 때 였을까. 당돌하게 나도 한 번 해보자 하고 다듬이질 한다는 것이 계속 한 곳만 치고 있으니 그러다가 이불 호청 구멍 나겠다 웃으시던 어머니. 산골에서 낙동강 유역에 기차가 달리는 소읍(小邑)으로 이사하고 학교에 입학, 늦잠을 자서 아침을 굶고 위험하게 선로(線路)를 질러 건너가던 곡예. 그래도 만년 지각생인 나. 보다 못한 어머니 인삼을 절구로 찧어서 꿀 항아리에 재워 두었다가 계절 따라 온수, 냉수에 타서 아침마다 한 대접 마시게 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이민 온 초기 인삼을 갈아보기로 했다. 5-6년 근 인삼은 다이아몬드 처럼 단단해서 맷돌에 갈아지기는 커녕 엉성하게 부셔진 인삼 속에 돌가루가 섞여 나왔다. 지금은 인삼을 이용하는 방법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한약재로는 물론 절편(切片)으로 하여 과자처럼 쉽게 먹을 수도 있고 심지어 비타민이나 정제로 만들어 병속에 넣어 판매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쩐지 인삼제품에 손이 가지 않는다. 앞 이빨이 백조 깃털처럼 하얗지 않고 비록 황금색으로 물들어 갈지라도 수시로 마시고 있는 것이 녹차(綠茶)이다. 음식은 눈으로 코로 혀로 소식(小食)을 하며 차(茶)는 무미(無味)가 진미(眞味)임을 알게 된 나이 덕 이리라. 어머님이 나를 보시며 이제 철이 드는 구나 살며시 웃으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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