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길을 걷다 보면 가끔 눈에 띄는 새의 빈 둥지가 있다. 예전에는 그런 빈 둥지를 보면서도 특별 한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저 집도 한때는 왁자지껄 했었을 텐데…“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무위에 주인 없이 얹혀있는 빈 둥지를 한 번 더 들여다보고는 오래전에 우리 곁을 떠나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집 현관문을 열면서 내 눈은 자연스럽게 아이 들이 쓰던 빈방을 올려다보며 한때 바빴던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삶의 이치에 따라 장성한 자녀가 부모의 곁을 떠나는 것이 순리하고는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여전히 아이들 곁을 떠나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고 있다. 부모의 눈높이로 보면 아무리 장성한 아이들이라 해도 언제나 “어린아이”로 보이기 때문인지 살아가느라 애쓰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려니와 보고 싶기도 해서 빈방을 볼 적마다 그 안에서 뒹굴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다 큰 아이들이 부모의 곁을 떠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면 부모가 자식을 그리워하고 염려하는 것 또한 당연 한일일텐데 이러한 걱정이 남다르게 깊어져서 마음의 병이 되는 경우 이를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아버지에게서 보다는 어머니들에게서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 이유를 가사와 자녀 양육에만 집중하다 보니 인간관계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고 정서적으로 더 섬세한 성품을 가진데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엄마의 손이 필요했던 아이들이 다 성장해서 나름대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쯤이면 엄마는 그제서야“내 시간”을 갖고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적, 심리적 여유를 갖게 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동안 남편과 아이들 뒤치닥거리를 하느라 잊고 살아온 젊은 날의 꿈과 욕망은 삶에 대한 회의와 상실감으로 이어져 중년기 이후의 삶에 대한 회한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원인이 되어 “빈 둥지 증후군”으로 나타났다가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한다는게 일반적인 과정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증상의 기미가 보이면 가능한 한 빨리 자신의 가정환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부부간, 부모-자식 간에 소통이 잘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서 주변인들과의 소통 문제는 물론 공허감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족들은 이와 같은 노력을 지지해주면서 포기하려는 마음이나 두려움 또는 정체감에 대한 회의 등을 이해해 주고 때로는 공감해 주면서 감정이입적 이해를 해 주는 것이 힘든 상황을 벗어나는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부부간 또는 가족 간에 취미생활이나 운동을 함께 한다든지 지역사회에서 자원봉사 활동 등에 적극 적으로 참여하거나 종교 생활을 하는 것도 정신건강을 돌볼 수 있는 바람직한 방법이다. 물론 심리 상담 전문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문제 해결을 위한 도움을 받으려는 노력 또한 바람직한 방법이다.
그러나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一切維心造)는 말이 있다. 자녀가 집을 떠나면 가족구성원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한다. 특히 여성의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지만 긴 세월동안 가정을 지키면서 자녀양육에 헌신했던 나의 노력이 이제 결실을 보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자랑스럽고 뿌듯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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