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매년 6월 셋째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기념한다. ‘어머니의 날’ 보다는 못하지만(?) 상점에는 카드를 비롯하여 아버지의 날 선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의 날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두 가지 일 것이다. 하나는 자녀들 입장에서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이며, 동시에 아버지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의미와 시대에 맞는 아버지상(像)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하는 날일 것이다. 예로부터 한국인에게 ‘아버지’의 의미와 자리는 엄하고 높은 자리였다. 군사부(君師父) 일체라 하여 아버지는 임금이나 스승과 같은 권위를 지닌 자리로 여겨졌다. 아버지는 온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밥상 예절이나 자녀의 교육은 물론 가정의 대소사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언제나 중심(中心)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아버지의 자리가 빈약하다, 빈약하다 못해 부재(不在)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아버지는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로 되었다. 유치원 자녀들 그림을 보면 어머니는 크게 그려지는데 비해 아버지 모습은 작게 그려지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말 잘 안 듣는 자녀에게 하는 어머니의 가장 큰 경고가 ‘아버지에게 말씀 드린다’ 였는데, 요즘은 아버지가 어린 자녀를 야단 칠 때 ‘너, 이러면 엄마에게 이를 거야’라고 한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누군가 웃자고 한 말이겠지만 전혀 뜬금없는 표현은 아닌 듯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버지 자신의 문제도 있겠으나 가장 큰 문제는 사회구조적인 변화에 있다고 본다. 사회 변화와 함께 우리 시대의 아버지 상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아버지의 날에 해야 할 일은 시대에 맞는 ‘아버지상’을 찾아내는 일이다. 보통 아버지상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많은 부분을 물려받는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 내가 지닌 아버지의 모습 역시 내 아버지로부터 은연중 보고 배운 것들이 다분하다. 나의 아버지 역시 아마 할아버지로부터 그런 모습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아마도 내 자녀가 가정을 꾸린 후 아버지의 모습 역시 상당부분 나를 닮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아버지의 의미와 역할, 아버지의 자리에 대하여 결코 가볍게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좋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 경우는 꽤 있어도, 훌륭한 아버지상을 보여준 기록은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이 기회에 조선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님의 아버지상을 주목해 보고자 한다. 다산에 대하여는 경학자, 예학자, 행정가, 교육가, 사학자, 토목공학자, 의학자, 장기 유배자, 통합적 인문사상가 등등 다양하고 풍성한 평가가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그가 당시 유배(流配)중에도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의 교육과 일상생활을 위하여 자상하고 친절한 조언과 정신적 지표를 일깨워 준 훌륭한 아버지상을 몸소 보여준 분이라는 점도 반드시 알려져야 한다. 당시 다산은 18년간의 귀양살이와 집안이 거의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 상황이었다. 아마도 다산에게는 세상을 향한 한탄과 불만과 원망이 가득한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좌절과 고통의 힘든 형편 속에서도 편지를 통하여 자녀들에게 자상하고 의연한 아버지의 자리를 지켰다. 그는 억울하게 유배생활을 당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포자기와 한탄으로 세상을 보내 자녀들에게 처지를 한탄하지 말고, 자신을 바르게 하고, 어머니를 잘 모시고, 형제의 우애를 돈독히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매일 학문에 정진하고, 세상을 위해 기여할 학문적 인격적 준비에 소홀하지 말라며 자상하고 반듯한 가르침을 주었다. 시대가 변해도 가정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필요하다. 돈 벌어 오는 일만이 아버지의 기능이 아니다. 엄부자모(嚴父慈母)의 전형적 아버지상을 벗어나 모든 가족들과 함께 대화와 격려와 공감을 통한 정서적 유대를 이루고, 얼굴을 맞대고 자녀 교육과 장래를 고민하고, 자녀에게 가풍과 정신적 유산을 전해주고, 자녀의 축복을 위하여 기도하고,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성실히 땀 흘리는 성실하고 따듯하고 영적인 아버지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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