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을 시작하고 헌신한 손봉호 장로께서 올해 초에 이렇게 말했다고 들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실패했다고 고백합니다.”
참으로 용기 있는 고백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운동을 시작하신 분이 이런 고백을 하시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기윤실은 회개로부터 다시 시작된다고 느끼며 그의 모든 생애를 회개한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옐로스톤 내셔날 파크에 늑대가 남획으로 멸종된 후 천적이 없어진 사슴과 엘크 무리수가 너무 급격히 늘어나며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렸었다.
십수년전에 캐나다로부터 늑대가 다시 도입되었는데 과학자들의 연구결과 사슴과 엘크무리의 건강 상태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것이다. 이유를 알아보니 사슴들이 늑대를 피하기 위해 열심히 죽어라고 달린 결과라고 한다. 늑대 뿐 만아니라 자연계에서 천적이 사라진 동물들은 이전보다 더 질병 등에 시달린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제약이나 견제가 없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니다. 교회에서 문제가 언젠가는 생겨 곪아 터질 때까지 손을 쓰지 못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우리는 어거스틴 처럼 자신에 대한 기준을 보다 더 엄격히 하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 한다.
우리는 자기에 대해 남보다 관대하며 자기의 허물을 덮고 싶어 한다. 아전인수 격으로 합리화하기가 제일 쉬운 법이다. 실제로 모든 문제의 시작은 이런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미국에 와서 미국 대학교의 교수들이 추천서를 학생들에게 써줄 때 자신의 지도학생이라도 무조건 좋게 써주지 않는 것을 많이 보았다. 있는 그대로 정확히 써준다.
좋은 학생은 좋은 대로 나쁜 학생은 나쁜 대로 쓰기 때문에 추천서는 신뢰성이 있다고 모든 사람이 생각한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지도학생을 좋게 써주는 풍토에 익숙한 나로서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우리를 망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이 최선이다. 기윤실 운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윤실 운동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혹자는 말한다 “기윤실 운동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도 기윤실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옐로스톤의 늑대같이 건강한 교회를 위하여 쫒아 다니고 도둑을 지키는 개같이 새벽에도 지켜야 한다. 짖지 않는 개는 소용이 없다.
낮선 이가 와도 짖지 않고 태만한 개의 운명은 어찌되겠는가? 기윤실 운동은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요한의 소리처럼 계속될 것이다.
그래야만 교회가 더 건강해진다.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멈추면 진정 실패한 것이지만 실패했다고 생각해도 계속되면 실패한 것이 아니다. 더 새롭게 시작될 뿐이다. 끝임없이 미래로 젊은세대로 이어질 기윤실 운동의 미래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문의 시작처럼 그려본다.
“I have 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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