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 종전 60주년 특별기획
▶ “적과 아군 뒤엉켜 맨몸 육박전”
원유욱 옹이 백마산 전투 당시 포탄 파편에 맞아 찢어진 목 부위 흉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진지전
열흘간 고지 주인 24번이나 바뀌어
“사방에서 포탄 펑펑 터지고 어머니, 하느님을 부르는 절규 소리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포탄 때문에 산 높이가 5m 낮아졌다고 할 정도였으니 상상해보세요. 총을 버리고 인민군과 서로 엉켜 뒹굴며 육박전를 벌이기도 했어요.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자는 마음뿐이었습니다.”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였던 백마고지 전투에서 국군 9사단 28연대 2대대 소속으로 전투에 참전했던 원유욱(85·예비역 대위) 당시 소위는 당시 전투 경험 상황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전투는 6.25전쟁 중 가장 치열하게 진지전이 전개됐던 시기인 1952년 10월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국군 9사단이 중공군 38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열흘 동안이나 이를 막아내며 고지를 사수한 싸움이다. 원유옥 옹이 참전했던 이날의 전투는 지난 2011년 한국에서 ‘고지전’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재탄생해 전쟁의 참상을 알리기도 했다.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내려오면 전우들이 거의 대부분 전사하고 몇 명 안 남아있어요. 전우를 잃었다는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쪽잠을 잔 뒤 대충 허기를 채우고 또 총을 쥐고 전투에 뛰어들었어요.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혈전이 열흘 동안 끝없이 반복된거죠”
원유욱 옹은 당시 한탄강 인근에 진지를 세우고 대기하던 중 적군의 기습공격에 포탄 파편을 맞아 목이 5cm 가량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목 주위로 혈흔이 낭자했지만 그는 후송을 거부하고 응급조치를 받은 뒤 곧바로 다시 전투에 뛰어들었다. 인민군에 의해 죽음을 당한 아버지와 전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전우들을 떠올리며 이곳에서 목숨을 바치기로 각오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상자가 너무 많아 4주 군사훈련을 갓 마친 이름도 모르는 보충병들을 받아서 전투를 치러야했어요. 전투능력이 거의 없는 병사들이었지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거죠. 그들을 위해서라도 백마산 고지를 반드시 점령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열흘 동안 24회나 백마산 고지의 주인이 바뀌기를 반복했고, 그 기간 9사단에서는 무려 3,416명이 전사하고 말았다.
“저만 살아남아서 전사한 전우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지금도 잠자리에 들 때면 전우들이 환하게 웃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결국 아군의 3배 이상인 1만 여명에 달하는 적군을 쓰러뜨리고 백마산 고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때의 아픔은 60년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다.
“전쟁의 비극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아쉽죠. 우리 후세들이 전쟁의 아픔을 절대 잊지 않길 바랄뿐입니다.” <조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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