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난 2011년 2월 첫날에 쓴 일기를 들여다보았다.
퇴직 후에 갖게 된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는 날이어서 기대와 흥분된 기분 때문인지 시작하는 글귀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일기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 인생 이모작이라고 하더니 내가 정말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는 그 첫날 출발선에 서있구나. 지금까지 주변에서 받아왔던 고마움을 이제부터는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 그래, 이웃을 위한 봉사, 그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새로운 일이요 내 삶의 화두로 삼아야 할 주제가 아닌가? 좀 늦은 감은 있으나 이제부터라도 이웃에게 봉사하는 뜻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워싱톤 가정상담소로 출근하는 첫날의 소감과 각오를 썼던 일이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떠나야 할 시간이 되어 뒤를 돌아보니 29개월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이곳에서 잠시 학교에 다니면서 살았다고는 하지만 평생을 한국에서 나고 살아온 내게 미국은 아직도 낯설고 외로운 곳이었다. 그런 외국 땅에서 시작했던 인생 이모작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당연하였는지 모른다.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한국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철저하게 “내려놓고 잊으라”던 친구의 말을 되새기면서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려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가며 버티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것은 ‘일’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잊는 일과 ‘마음을 다스리는 일’ 이었다.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은 지역사회를 알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이 지역사회에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놀라게 했고, 이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식문제, 가정불화, 그리고 학교나 사회에서의 적응실패 등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고 어찌할 바를 몰라 마음을 끓이며 도움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들에게 손길을 내밀어줄 수 있는 기관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이곳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곳”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생각 이 “과거의 나”를 잊게 하여 주었고 내가 맡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해 주었다.
상담실에서 내담자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을 들어주고 문제해결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애를 쓰 던 일은 “봉사”를 하겠다고 나선 내가 오히려 내담자들에게서 봉사를 받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할 정도로 더없이 보람 있는 일 이었다.
신문 칼럼을 통해서 지역사회의 독자들과 그간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치면서 터득한 지식과 정보를 함께 나누며갖는 기쁨은 “인생 이모작”의 수확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특히 심혈을 기울여 계획했던 ‘열.공.부.모 교실’의 열기는 아마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추억 거리가 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간 한국일보에 격 주간으로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서 “굼벵이도 뒹구는 재주는 있다”는 단행본을 발간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 이모작에서 거둘 수 있었던 큰 수확중의 하나였다.
그동안 한국일보 지면에 새로운 글이 나갈 때마다 미주지역 여러 곳에서 칭찬과 격려의 전화를 주시면서 조언과 제언을 해 주셨던 많은 분께 이 기회를 빌려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앞으로도 글 쓰는 일이 힘들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분들의 칭찬과 격려를 되새겨 가며 마음속으로 애독자 여러분께 더 좋은 글로 보답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끝으로, 뒤늦게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한 사람에게 도시락과 간식을 챙겨주면서 출근길을 배웅해 주었었고, 한겨울에는 캄캄한 시간에 퇴근하는 사람을 위해 매일 불을 밝혀가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던 아내의 사랑과 정성에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힘들 때마다 잊지 않고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29개월간의 인생 이모작 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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