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온통 ‘개똥 지뢰밭’에 시정부 ‘전쟁’ 선포
▶ 모든 애완견 DNA 데이터베이스 체계 구축, 배설물 분석해 ‘뺑소니 주인’에 벌금 부과키로, 시범실시 지역‘깨끗’불구 엄청난 비용이 문제
나폴리의 수의사들이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할 DNA 샘플을 구하기 위해 핏불 피오나의 피를 뽑고 있다.
이탈리아의 나폴리는 호주의 시드니,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힌다. 그러나 화려한 명성과 달리 나폴리는 골병이 단단히 든 도시다.
우선 재정상태가 엉망이다. 시 정부의 부채만도 무려 20억달러에 달한다. 거리에 나서면 ‘궁핍과 빈곤의 증거’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제때 보수공사를 받지 못한 채 움푹움푹 파인 도로는 달 표면을 연상시킨다. 거리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더미 역시 눈과 코를 피곤하게 만든다.
치안상태도 불안하다.
나폴리는 카모라 마피아 조직의 본산지이다. 그러나 심한 재정난에 시달리는 경찰에겐 이들과 맞설 인력과 수단이 없다. 돈과 조직을 갖춘 마피아가 이곳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그림자 정부’다.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오솔레미오’의 본향이지만 속사정과 현 상황을 알고 들여다보면 기가 막힐 정도다. 한마디로 말해 과거의 명성을 뜯어먹고 사는 ‘더럽게 아름다운’ 도시다.
물론 지역 여론이 좋을 리 없다. 시 정부는 개선책을 내놓으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제시해 주어야 하는데 만만한 대상이 없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나폴리시 정부가 산적한 현안을 뒤로 미뤄둔 채 개똥 단속에 최우선 순위를 매긴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아닌 말로 나폴리는 ‘개똥 천지’다. 개똥을 피해 걷다보면 장애물 경주를 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나폴리의 주 소득원이 관광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거리의 개똥이 심각한 골칫거리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성가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폴리 시정부는 애완견들의 DNA 샘플을 채취해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는 시범 프로젝트를 들고 나왔다. 주민들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 실질적 프로젝트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개똥 단속 프로젝트의 칼끝은 ‘개 주인’을 겨냥한다. 그들은 무책임한 뒤처리로 나폴리를 ‘개똥 지뢰밭’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애완견이 일을 본 흔적을 말끔히 치워야 하는데 열 명의 소유주 중 아홉 명은 모른 척 뺑소니를 친다. 하지만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한 단속이 자리를 잡으면 얌체 주인들은 더 이상 얼굴을 감출 수가 없다. 데이터베이스에는 일을 저지른 개 주인의 이름과 연락처도 입력된다.
일단 데이터베이스만 구축하면 그 다음 작업은 비교적 간단하다. 수거한 배설물에서 뽑아낸 DNA를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된 자료와 대조하면 금방 소유주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적발된 애완견 주인에게는 500유로(미화 685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DNA 확인을 위한 개똥을 수거하는 작업은 일선 경관들의 몫이다. 하지만 재정난으로 인력확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뜩이나 부족한 경찰력을 개똥 수거에 투입하는데 대한 반발이 없을 리 만무다.
나폴리에는 애완견이 유난히 많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 8만마리의 개들이 우글댄다. 나폴리 전역을 대상으로 단속캠페인을 시행하려면 상당한 인력과 자금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고민 끝에 나폴리 시정부는 1차적으로 보메로와 그 이웃 동네인 아레넬라를 시범시행 지역으로 선정하고 이 지역 애완견들의 피를 뽑아 DNA를 추출하는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제까지 주인의 손에 이끌려 동물병원을 찾은 애완견의 수는 약 200마리. 이들의 피를 뽑고 DNA를 알아내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2만7000달러 정도다.
그러나 앞으로 적용 대상지역이 확대될 경우 비용이 치솟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거리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기도 힘겨운 판에 개똥 단속에 돈을 쏟아 붓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부정적 반응이 튀어나온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열혈 지지자들도 적지 않다. 개똥 수거 작업팀을 이끄는 나폴리 시경의 엔리코 델 가우디오 경위도 그 중 한 명이다.
아들이 재학 중인 초등학교에서 가우디오 경위는 ‘개똥 경찰’로 통한다. 호칭은 별로지만 가우디오 경위는 아들의 친구들로부터 영웅대접을 받는다.
어린이들은 늘 신발에 개똥을 묻히고 다닌다. 거리 전체가 개똥밭이니 아무리 조심해도 피해가기가 쉽지 않다.
이런 짜증스런 환경에서 아무도 치우지 않는 ‘불순물’을 제거해 줄 뿐 아니라 뒤처리를 하지 않은 채 뺑소니친 애완견 소유주까지 잡아주는 그가 아이들 눈에 존경스런 인물로 비친다.
가우디오 경위는 개똥을 ‘존재’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의 관할구역인 비아 루카 지오르다노의 거리가 깨끗해진데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 지역 애완견들의 DNA 샘플이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된 후 ‘존재’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첨단과학의 힘을 빌린 단속책이 유감없이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나폴리와 마찬가지로 유럽의 다른 주요 도시들 역시 뺑소니 사고방지를 위해 고심하고 있다.
몇몇 극약처방도 나왔다. 스페인의 한 시장은 신원이 확인된 뺑소니 애완견 소유주 앞으로 그가 방치했던 개똥을 소포로 발송했다. 그런가 하면 일부 도시들은 적발된 ‘범인’들의 명단을 공개해 망신을 준다.
반면 멕시코시티는 거리의 배설물을 수거해 봉지에 담아온 사람에게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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